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었다. 정권 인수기 없이 곧바로 취임한 문 대통령은 국정을 조기에 안정시켰고, 역대 대통령들이 누려보지 못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의 고조라는 어려운 외교·안보 문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 인식과 치밀한 신뢰 구축을 통해, 지난달에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계기를 마련했고, 북미회담을 중재하기에 이르렀다. 남북문제와 외교 분야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남과 북이 적대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남북대결을 기초로 형성되어온 한국의 정치와 외교 레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문제에서의 큰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아마 내년부터는 경제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고, 임기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더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가 경제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공공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시간 단축, 청년고용 대책 등을 대선공약에 맞춰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은 대통령 공약 중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공약의 이행률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정책에 대해 전문가와 국민들의 다수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자리 정책이 단기적 대책이나 재정 지원에 집중되어 있고,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와 자영업의 비중이 과도한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속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문제와 국제관계의 현실을 짧은 기간에 파악하고 현실적이고 냉정한 대책으로 남북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듯이, 경제문제에서도 똑같이 냉정하고 현실적인 평가를 먼저 내려야만 한다. 교조주의적 주장과 막연한 기대는 경제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특히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뜬구름 잡는 식의 ‘통일대박론’이 횡행할 수 있고, 정치권이 국내 경제문제의 해결책인 양 이를 악용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남북경협은 북미협상과 비핵화의 진전 속도 그리고 체제 유지와 개방 속도 사이에서 북한 정권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불확실한 정치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북한의 인적자본과 사회 인프라 구축 정도와 우리 기업들과의 보완성이라는 경제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1970년대부터 성장해온 주력 제조업들의 경쟁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작금의 우리 경제 상황을 남북경협만으로 타파할 수는 없다. 통일대박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대어 우리 경제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면 안 된다. 복잡하고 험난한 국내 경제구조 개혁의 적기를 놓친다면, 한국 경제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견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에 짐이 될 수도 있다. 

촛불 시민혁명이 완수되려면, 정부주도-재벌 중심의 박정희 경제 레짐이 바뀌어야만 한다. 이 박정희 레짐은 경제 개발기에는 작동했으나, 더 이상 제조업의 고도화와 혁신 성장으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는 없다. 집권 3년 차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제조업의 위기와 저성장의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올해 말까지 박정희 개발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질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냉정한 현실 진단과 치밀한 정책 시뮬레이션을 기초로 재벌개혁, 노동개혁, 복지개혁, 재정개혁 등을 통해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경제 레짐 교체를 완수할 수 있을지 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궁극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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