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평화의 소녀상 때에 이어 또다시 일본 영사관 앞이 시끄럽다. 한 시민단체가 노동자의 날을 맞아 영사관 앞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2년 전처럼 경찰은 이들의 행보를 막았다. 시민단체가 “건립을 위한 이동을 왜 막는 것인지” 수차례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경찰 확성기에 “준법 집회를 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으니 해산하라”는 목소리뿐이었다. 동상은 많은 시민의 모금으로 만들어졌는데,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 건립을 막는다는 것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사관 앞을 지키는 수많은 경찰을 보며 정부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왜 경찰까지 동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외교부는 강제징용노동자상의 건립 취지에 동감한다면서도 일본영사관 앞이라는 장소를 문제 삼았다. 그들의 근거는 영사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수 없다는 ‘빈 협약’이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세우는 동상이 그 협약에 어긋난다는 것에 납득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정부는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려는 시민들을 막아섰다. 대치 끝에 시민들이 다치고, 소녀상이 훼손됐다. 분명 이러한 짓은 강제징용노동자상의 의미를 생각한 행보는 아니었다. 의미를 동감한다던 말과는 모순이다. 어떤 이유일지라도, 정부는 결과적으로 강제징용노동자상의 의미보다는 외교 관계를 더 중요시했던 것이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날’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영사관 앞’에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 건립대회 참가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징용노동자들은 선배노동자들이므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상을 세워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마트 계산대에서 쓰러져 사망한 계산원,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채 일하는 건설 노동자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해있는 노동자들이 아직 많다. <노동법>에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명시돼있지만, 이들은 그 사각지대에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상황을 곱씹고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들이 있었다. 강제징용노동자들은 바로 우리의 선배 노동자였다. 이들 모두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노동자들이다. 

경찰의 진압으로 강제징용노동자상은 현재 설치예정지로부터 40m 떨어진 곳에 멈춰 서있다. 우리나라의 아픈 노동 역사를 상징하는 강제징용노동자상. 이를 세우려는 것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강제징용노동자들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노동권을 찾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비) 노동자로서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노동’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본 영사관 앞’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에 그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제부턴 장소를 둔 갈등이 아닌, 강제징용노동자상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의 발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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