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고발인 ‘미투’에 이어 ‘갑질’에 대한 폭로가 뒤따르고 있다. 이 두 사안은 권력을 매개로 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우리 대학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급기야 대학본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총장 명의로 학내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대학 차원에서 이번 사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의지 표명은 과연 적절한가. 피해자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여러 불이익과 2차 피해를 감수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미투’라면, 대학본부가 ‘미투’를 지지한다는 입장 표명은 너무도 태평스러운 태도이다. 사태를 안일하게 보는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피해자의 고발이 있기 전에 여러 채널을 통해 실상을 파악하고, 적절한 후속 처리 및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대학본부가 할 일이다. 미투 운동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미투’와 같은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사전, 사후 조치를 취해야 했을 일이다. 

‘미투’와 ‘갑질’은 우리에게 보다 근원적인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협소한 인식이나 미봉책 마련에 그쳐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핵심은 권력에 기댄 폭력이다. 성폭력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폭력 상황은 비단 성폭력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유무형의 육체적 심리적 폭력이 미만해 있다. 

대학이라고 울타리 밖의 사회와 많이 다를까. 대학은 외형상 사제관계, 선후배관계 등으로 맺어져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사제관계는 권력관계이기도 하다. 대학은 오랫동안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측면을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할 일이다. 대학에서도 이미 다른 사회 집단 못지않게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있었다. 좀 더 세심하게 대학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상호 존중과 배려 위에서 형성되어야 할 사제관계가 변질되거나  다양한 형태의 폭력상황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과연 그러한가.   

근래 폭로되고 있는 폭력 사례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오랜 시간 쌓이고 묵혀왔던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행으로 관성으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반복해 왔던 일이 실은 폭력이 아니었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피해자들의 호소에 냉소하거나 빈정대는 것 역시 또 다른 폭력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폭력에 동조하는 것이다.  

권력에 기댄 폭력의 강도와 빈도는 자유와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살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아직은 미숙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미투’와 ‘갑질’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각성을 촉구하는 논의들이 활발해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의 실질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함께 하고, 일상적 차원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지 않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실천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 그래야 대학이 인격 형성의 터전이고, 인권의식의 보루라는 점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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