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미투 대자보가 찢기고 버려졌다. 자신의 사고와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대자보이기에, 이를 훼손하는 행위는 타인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폭력’이다.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상대방의 의견과 다른 생각 또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이 <헌법> 제21조 4항에 의거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를 생각했더라면, 이견을 담은 대자보를 직접 게시하거나 학내 커뮤니티 통해 이견을 제시하는 등 다른 방도를 택했을 테다. 그럼에도 마치 ‘대자보를 찢는 것도 표현의 자유’인 양, 여성 연구소의 성명문에 ‘혐오 조장 메갈 OUT’ 낙서를 적은 것도 모자라 악의적으로 대자보 자체를 훼손했다.

더군다나 훼손된 것은 권력형 성폭력을 폭로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요구하는 ‘미투 대자보’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그 자체를 거부할 자유와, 잘못된 권력 구조를 타파하려는 목소리를 낼 자유가 있었지만, 그동안 참고 침묵했어야만 했다. 혹여나 그 구조 속에서 또다시 피해나 보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비로소 지금에서야 이들의 목소리를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덕분에, 용기 내어 그 자유를 표출할 수 있었다. 헌데 이러한 과정 끝에 나온 대자보가 누군가에 의해 찢겨 나갔다. 대자보를 붙인 이의 말을 빌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수준을 넘어 (대자보가) 내 눈에 띄지 말라고 공격하는’ 행위였다. 이는 권력 구조에 순응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꼴이며, 피해자에게 또다시 피해를 주는 짓이다.

훼손한 이들은 해당 대자보가 ‘미허가’ 게시물이라는 점을 문제시했다. 대자보가 다른 게시물을 가릴뿐더러, 허가를 받지 않아 학교 규정에 어긋난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학내 게시판에는 미허가 게시물이 난립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시기에 여러 종류의 미허가 게시물 가운데 ‘대자보’만을 골라 찢고 버린 것은 이들의 합리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일례로 대자보 일부를 찢은 것과 이를 학내 커뮤니티에 인증하는 작태는 ‘미허가’라서가 아닌 ‘대자보’여서 비롯된 행동임을 방증한다. 단지 ‘허가를 받지 않아서’는 조악한 변명일 뿐 이들의 말대로 대자보가 ‘꼴 보기 싫어서’ 찢은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미투 운동이 활발했다. 우리 학교에서 발발한 미투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헌데 피해자들이 굳이 대자보를 자필로 써서 ‘학내’ 게시판에 부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자보는 ‘우리 학교’에서 벌어진 ‘학생’ 인권 침해 문제를 ‘학내 구성원 모두’가 인지할 수 있게 해 ‘학내 공론화’를 이끌어낸다. 덕분에 총장, 총학생회 그리고 여교수회 등이 해당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이처럼 대자보는 우리 학교에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선의에서 시작됐다. 이를 통해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우리’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선의’의 산물을 ‘악의’적으로 훼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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