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

물리교육 교수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학은 중세에 처음 등장했다. 1088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 1150년경에 설립된 파리 대학, 1167년에 설립된 옥스퍼드 대학은 중세대학의 삼총사로 간주되고 있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볼로냐 대학은 설립 1000주년이 되는 2088년에 대비하여 벌써부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대학은 유니버시티, 단과대학은 칼리지로 불린다. 대학의 어원은 전체 혹은 연합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이고, 단과대학의 어원은 클럽 혹은 단체를 의미하는 라틴어인 콜레기움(Collegium)이다. 함께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들이 연합하여 대학을 만든 셈이다. 

중세대학에는 대체로 네 학부가 있었다.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교양학부 혹은 학예학부(Faculty Of Liberal Arts)가 그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 쓰는 사각모가 네 학부를 상징한다는 흥미로운 전설도 전해진다. 네 학부 중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행사했던 곳은 교양학부였다. 당시에는 교양학부의 학부장이 대학의 학장이나 총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양은 예나 지금이나 대학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교양학부가 개설한 과목은 소위 ‘자유칠과(Seven Liberal Arts)’로 불렸다. 그것은 대부분 문법, 수사, 논리의 3학(三學, Trivium)과 산수, 기하, 천문, 음악의 4과(四科, Quadrivium)로 구성되었다. 3학은 오늘날로 치면 말하기와 글쓰기에 관한 과목으로 사실상 의사소통에 관한 훈련은 모든 학문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성격을 띠고 있다. 4과는 오늘날의 수학과 과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의 음악도 소리의 수학적 규칙이나 악기의 과학적 원리를 다루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교양학부의 자유칠과는 자유인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과목으로 간주되었다. 자유칠과를 통해 교양을 갖춘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구별되어 자유인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중세대학이 오늘날의 수학과 과학을 교양의 중요한 기둥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수학과 과학을 알아야 교양인이고 자유인이었던 셈이다. 교양하면 과학은 제외하고 인문학을 주로 떠올리는 요즘의 풍조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교양학부를 마친 학생들은 자유칠과의 세부적인 과목을 계속 탐구하거나 신학, 법학, 의학을 전공했다. 중세가 기독교 사회였으니 신학이 중요했을 터이고, 사람이 살다 보면 다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니까 법학과 의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처럼 대학은 처음부터 당시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대학이 상아탑의 논리에 갇히지 않도록 유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1231년에는 그레고리우스의 대칙서인 ‘제학(諸學)의 아버지’가 공표되었다. 그것은 대학의 자치와 특권을 보장한 최초의 공식적인 문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레고리우스의 대칙서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문장도 나온다. “학생인 체하면서 수업에도 안 나가고 선생의 지도도 안 받는 자는 학도의 특권을 결코 향유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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