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과학칼럼니스트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는 계절이 오면 식물들은 뽐내던 꽃을 떨구고 자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씨를 옮겨줄 상대를 유인하기 위해 과육을 달게 만듭니다. 과육이 떫거나 신 경우는 씨를 옮기기 이르다는 식물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식물의 기대와 다르게 열매를 성급하게 빼앗아 버립니다. 5월이 되면 마트에는 푸른 매실이 한가득합니다. 바로 매실청을 담그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매실 뿐만 아니라 각종 열매를 청으로 만듭니다. 청은 음식을 오래 두고 먹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매실청이 효소액으로 둔갑을 합니다. 담그는 재료에서 추출된 효소가 몸에 좋다고 하는 거지요. 물론 효소는 생명체에게 중요합니다. 효소 없이는 생명체가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효소를 화학의 눈으로 보면 기능을 가진 거대한 단백질 분자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장은 커다란 단백질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단백질은 작은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장은 아미노산 단위의 작은 분자를 흡수합니다. 그러니까 돼지껍데기를 먹는다고 바로 피부에 좋다는 콜라젠으로 흡수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아미노산을 흡수했으니 우리 몸은 이 재료로 다른 효소를 만들 수 있고 세포도 만들고 근육도 만듭니다. 매실에 있던 효소가 다시 조립된다는 보장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매실액에 효소가 있기는 한 걸까요?
매실은 대부분 탄소, 산소, 수소와 수많은 질소화합물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미네랄이라 불리는 금속산화물이 있지요. 주로 산화나트륨과 산화칼륨입니다. 이런 것들이 산화되고 물에 녹아 염기성 식품이 됩니다. 그리고 비타민 등 여러 가지 성분들이 들어 있습니다. 천연물질은 복잡한 분자 재료로 뒤범벅 돼 있습니다. 여기에 설탕을 붓습니다. 저렇게 설탕을 많이 먹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넣지요. 청의 원리는 삼투압 현상입니다. 설탕의 고농도로 재료의 여러 성분이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설탕 분자와 버무려집니다. 재료가 가진 유효성분은 있겠지만 효소만 고스란히 빠져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럼 설탕과 만나 효소를 생성한다는 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단백질의 생성을 맡은 세포 입장에서 웃을 일이고 생성이 이렇게 쉽다면 온 세상이 단백질로 뒤덮였을 겁니다. 이제 효소액이 효소발효액으로 옷을 갈아 입습니다.
한국인은 발효식품에 이미 균이 있다는 것을 알지요. 발효식품은 그 균이 재료를 분해해 나온 대사물질입니다. 그런데 설탕에 균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높은 농도의 설탕은 균의 세포막 안의 내용물도 뽑아냅니다. 우리는 음식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과 설탕으로 삼투압현상을 이용한 겁니다. 이런 저장 방법에서 좋지 않은 것은 나트륨 성분과 당 성분일 겁니다. 청은 재료에 들어 있던 고유 성분들로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당뇨나 고혈압 환자에게는 이런 음식이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매실 씨에는 아미그달린이 들어 있고 이 물질이 청산이라는 독이 됩니다. 선조들이 매실청을 담글 때 청에서 씨를 제거했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자연으로 돌아가 산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방송이 있습니다. 산에서 채취한 약재와 열매로 청이나 발효액 혹은 술을 담가 섭취를 하더군요. 재료는 한 가지도 아니고 수십 가지가 되기도 합니다. 천연재료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그 양이 미미하더라도 이 물질이 독성을 가진 경우 섭취를 하게 되면 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저장식품을 무조건 꺼릴 이유도 없습니다.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당과 유효한 성분들이 있으니까요. 전통이라 해서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음식에도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고 어떤 음식이든 과하면 독이 됩니다. 독과 약은 같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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