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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우먼> 몸과 정체성에 대한 선언 그리고 영화정치학
  • 정민아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 승인 2018.04.29 06:04
  • 호수 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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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우리로서는 보기 힘든 칠레영화다. 칠레영화하면 당장 떠오르는 작품이 <칠레전투>(1975-79)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인데, 이 영화는 사회운동이나 현장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필수 아이템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옌데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축출되기까지의 비극적인 과정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다. 칠레시네마는 1970년대 뉴라틴아메리칸시네마의 한 영역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칠레시네마를 박제된 신화 정도로 여기고, 현재에 대해서는 관심이 멀어지던 찰라, 지난 3월에 칠레영화가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 6위 안에 드는 큰 영화 시장을 가진 한국은 아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 칠레영화는 바로 <판타스틱 우먼>이다. 제목이 ‘우먼’이다. 당연히 여성영화이고, 여성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당시 여우주연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여우주연상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김민희에게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유부남을 사랑한 어느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타스틱 우먼>은 이과수 폭포의 환상적인 물줄기에서 시작하여, 무대에 오른 한 여인이 슬픈 오페라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난다. 중년의 오를란도는 젊은 연인 마리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여행권 2장도 마련한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그 날 밤, 오를란도는 심한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깬다. 마리나는 서둘러 오를란도를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그는 그날 새벽에 사망한다. 
  이후 영화는 남겨진 마리나가 당면하게 되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이다. 그것도 성기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유방과 페니스를 모두 소유한 그녀는 사람들에게는 괴물 같은 존재다. 의사는 마리나가 죽은 이의 파트너인지 확인하고, 성범죄 전문 형사는 멍이 심하게 든 오를란도의 죽음에 대해 그녀에게 추궁한다. 오를란도의 전 부인과 장성한 아들은 마리나를 벌레처럼 본다. 영화는 마리나가 온통 적대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애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초대받지 않은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영화의 시점은 마리나의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의 모든 장면에서 마리나가 등장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동화되고, 그녀가 겪는 시련을 함께 참아내며 결국 그녀가 승리하기를 빈다. 영화는 ‘판타스틱’한 요소들로 마리나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한다. 일그러진 거울에 비친 몸, 거친 바람을 정면에서 맞으며 걸어가는 긴 장면, 격정의 오페라를 통해 위안받고자 하는 순간, 때때로 유령처럼 등장하며 존재감을 발휘하는 연인. 이 요소들로 인해 마리나의 고난은 강조되며, 그리고 음악은 그녀와 우리를 한없이 위로한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예술성을 한껏 드높인 이 영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마리나 주변 인물 각각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오를란도의 전 부인의 마리나에 대한 냉대는 그녀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 아니다. 마리나로 인해 결혼생활이 파탄 났기 때문이다. 오를란도의 아들이 마리나에게 보인 거친 태도는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탐욕이며, 형사가 보이는 강압적인 태도는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죽은 자의 유족의 동의가 필요한 의사의 태도 또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마리나를 응원하지만, 이 모든 이유 있는 냉대와 탄압에는 성 정체성의 문제만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헝가리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수상했어야 한다는, 아무도 듣지 않을 불만을 표하며, 올해 아카데미영화제는 확실히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이프 오브 워터>가 아니라 <쓰리 빌보드>가 작품상이어야 했다. <판타스틱 우먼> 역시 트럼프로 인해 온갖 차별이 당연시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미국 정치에 영화계가 반발하며 경종을 울리면서 균형을 잡아가려고 애쓰는 양상으로 보인다. 삼각관계와 성 정체성을 다룬, 경쾌하고 신선한 좋은 한국영화가 있으니 강력히 추천한다. 바로 <시인의 사랑>이다.

정민아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feliz_ing@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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