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2018)

감독 김일란

9년 전 1월 20일. 매서운 물줄기가 용산구 남일당의 한 건물 옥상에 쏟아졌다.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점거 농성을 벌이는 철거민들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씨가 피어오른다. 순식간에 망루를 뒤덮은 화염은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영화 <공동정범>은 이 참극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철거민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주거권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 불지옥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이충연(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김주환(신계동 철거민) △김창수(성남 단대동 철거민) △천주석(서울 상도4동 철거민) △지석준(서울 순화동 철거민)은 경찰을 죽였다며 ‘공동정범’으로 기소된다. 법원이 이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생존자들은 동시에 가해자가 돼버렸다. 출소한 생존자들은 용산 철거민과 연대 철거민으로 나뉘어 서로 날을 세운다. 용산 철거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망루에 올랐지만 덜컥 ‘공동정범’이 돼버린 연대 철거민들.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답답한 현실을 나누고 싶지만 용산 철거민의 반대에 부딪힌다. 죄책감을 숨기고 살아가는 용산 철거민에겐 진실규명이 절실하다. 지난 일에 대한 한풀이는 하고싶지 않다. 사회에 용산참사를 알리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여태까지의 불만이 주된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출소 이후 서로를 외면했던 생존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본인들을 ‘공동정범’으로 만든 진짜 ‘공동정범’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는 참사 당시 상부였던 강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비추며 마무리된다. 

용산 참사는 이 두 사람과 관련해 수많은 의혹을 안고 있다. 먼저 진압과정에서 위험물질을 확인해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집회시위관리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이례적으로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기도 전에 이미 강제진압계획이 마련돼, 농성 하루 만에 진압이 시작됐다. 당시 이를 두고 과잉진압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진압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대참극의 책임은 오로지 철거민들이 떠맡게 된 것이다.

쏟아지는 의문에도 용산 참사는 지난 9년 동안 수면 아래 묻혀있었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4명이 중상을 입은 대참극임에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청와대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용산 참사 여론을 무마하라는 홍보지침을 만드는 등 사건을 숨기려 했다. 다행히 최근에 용산 참사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2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됐다. 이제서야 검찰의 편파 부실 수사와 기소권 남용 등의 의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긴 시간 베일에 싸여있던 사건의 전말이 제대로 밝혀지는지 주목해야 한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관련된 의혹의 사실 여부를 명확히 알아야 책임을 묻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 제2의, 제3의 용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첫걸음인 것이다. 용산 참사가 그저 ‘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정의되어서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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