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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룰, 과연 ‘룰’일 수 있나?
  •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 승인 2018.04.08 08:07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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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미투 운동의 여파를 쫓아 빠르게 떠오르고 있는 신조어가 있다. ‘펜스룰’이다. 2002년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처음 세웠다는 이 ‘룰’은 ‘행여나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남성은 여성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로 요약된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마이크 펜스는 ‘아내 이외의 여성과는 식사하지 않는다’며 정치인으로서 혹시 남들의 눈에 이상하게 비칠 수 있는 상황을 경계해서 말했을 뿐이다. 유명인이라면 염두에 둘 만한 처세 지침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미투 공세에 대한 남자들의 자구책’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단지 사적인 시간을 피하는 수준을 넘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여자는 뽑지 말자’,‘여자 동료는 따돌리고 회의도 회식도 남자들끼리만 하자’ 식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유행했던 ‘조삼모사 패러디 만화’를 응용한 만화도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 ‘앞으로 회식에서 여성들을 제외한다’고 남성 상사가 밝히자 ‘여성 차별이다’라고 반발하는 여성 사원들. 그러자 ‘앞으로 여성분이 참석한 회식에서 남성을 추방한다’고 상사는 눙치고 여성들은 즐거워한다···!

 ‘미투’를 오랜 수모와 피해를 참아왔던 약자의 외침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하고,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여자들은 끼워주지 말기로 하자’고 정한다면 그것은 처세술도 사회규범도 아니다. 인류 역사상 되풀이되어 온 ‘분리주의’일 뿐이다.

<성서>에는 미리암이라는 모세의 여동생이 이집트에서의 탈출 때 사실상 사제 노릇을 했다고 적혀 있지만, 모세가 만들었다는 율법에서는 사제직을 남성에게만 한정했다. 기독교 역시 ‘여자들이여,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바울의 말을 근거로 아주 최근까지 여성을 사제직에서 배제해왔다. 이슬람교 역시 그랬으며, 분명 무함마드 당시에는 남녀가 자연스레 함께 둘러앉아 예배를 보았음에도 후대에는 예배당의 중심은 남성 사제와 신도들이 차지하고 여성들은 창살이 둘러쳐진 뒤편 가장자리에 모여앉아 따로 예배를 보도록 했다. 그리고 ‘남편만 예배를 드리면 된다. 가사에 바쁜 여성은 굳이 예배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관행까지 만들어서 ‘신앙의 공동체’에서 여성들을 슬그머니 내쫓으려 했다.

자이나교의 분파는 여성을 배제하기 위해 묘한 논리를 내세웠다. 그들은 철저한 무소유를 주장하며, 재산은 물론 옷가지조차 포기할 수 있어야 참된 교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여성은 옷가지조차 포기하면 부끄러운 모습이 될 게 아닌가? 따라서 여성 신도는 영원히 신앙의 정점에 도달할 수 없다!

시민으로서 공직을 맡고, 투표에 참여할 권리 또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여성에게 허용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3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는 아직도 여성에게 재산권이나 직업 선택권이 없다.

분리주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만은 아니다. 인종적, 종교적, 이념적 소수에게는 언제나 자행되었던 악습이다. 16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대부분 도시에서는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고, 때로는 거주조차 못 하게 내쫓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쫓기에는 너무 많은 유대인 인구를 가지게 된 이탈리아에서는 16세기부터 ‘게토’로 불리는 유대인 거주구역을 만들어서 유대인들은 그곳에서만 생활하도록 했다. 스페인에서는 수백 년 동안 유대인의 공직 취임을 금지해왔고, 근대 이후에는 나치가 1935년에 독일과 독일이 점령한 모든 유럽에서 유대인의 공직 취임을 금지함으로써 이에 호응했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까지 ‘개와 유대인 출입 금지’라고 적힌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많았다. 1970년대에는 반미-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니카라과, 우간다 등의 나라에서 엉뚱하게 유대계 자국민들에게 화살을 돌려 몹시 박해하고, 추방했다. 또한 유대인 차별이 비교적 빨리 사라진 미국에서는 흑인은 백인과 함께 공부할 수도, 앉을 수도, 식사할 수도 없다는 철저한 분리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펜스룰이 ‘남성들의 자구책’이라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니까 이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리주의일 뿐 아니라 여성 모독이기도 하다. 모든 여성을 잠재적 ‘꽃뱀’취급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의심과 혐오는 공평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있거나 적어도 동등한 조직이라면, ‘이제부터 여자들은 끼워주지 말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남성과 여성은 다르지만 서로 아끼고, 이해하면서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할 존재다. 섣부른 오해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악습을 재생산하고 원한을 더욱 키워가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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