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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어하우스에 쉐어가 있나요
  •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승인 2018.04.08 08:00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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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한국에서 주거 공간의 확보는 현재 삶의 문제이며 미래의 삶을 좌우한다. 이는 젊은 청춘들에게는 더욱 절박하다. 매번 도돌이표인데 이제 탈출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주거 형태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해왔고 이는 대중문화에 반영되곤 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쉐어하우스는 사실 이미 이전에도 배태되어 있었다. 예컨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가운데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는 하숙집이 배경이었다. 대학생의 대표 거주 공간이 그만큼 하숙집이었기 때문이었다. 통제는 있지만 하숙집의 매력은 여러 사람이 같이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다. 9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은 하숙집이기는 했지만 좀 더 고급스러운 모습이었다. 당시는 IMF 외환 위기가 닥치기 전으로 사회 전체가 버블시기였다. 오늘날 쉐어하우스와 연결될 수 있는 점이 있는데, 공유 공간과 반 독립적 생활이었다.

물론 미디어 속 거주공간은 늘 그렇듯이 실제와 달랐다. 아니 더 비참해졌다. 2000년대 비정규 하청노동자가 늘면서 청년들의 거주공간도 이런 드라마들보다 못하게 되었다. 취준생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룸에서 고시원으로 그들의 주거 공간은 점차 더 좁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쉐어하우스가 대안 주거 공간으로 부각되었다. 좁은 고시원에 사느니 차라리 개인의 공간이 약간 침해되어도 좋은 쉐어하우스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쉐어하우스는 각자의 공간을 보장하면서도 공동으로 거실이나 주방을 공유하는 주거 공간형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싱글족의 삶이 화려해 보여도, 외로움이라는 정서적 결핍을 채워줄 수 있고,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공동의 경험이나 코칭, 멘토링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런 점을 쉐어하우스가 채워줄 수 있어 보였다. 이런 쉐어하우스의 형태는 초기에 제법 등장했고 반응이 좋았다. 이를 일정 정도 반영한 드라마가 바로 JTBC <청춘시대>였다. 이 드라마는 다섯 명의 대학생 여성들이 쉐어하우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눈길을 끌었고 시즌 2까지 제작되었다. 물론 치열한 취준생의 삶보다는 연애 등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역시 드라마는 현실도피나 대리 충족인가. 

그런데 이외에도 드라마 속의 쉐어하우스는 갈수록 원래의 취지와 많이 달라진다. KBS <황금빛 인생>에서는 청춘들이 쉐어하우스에서 사는 모습이 등장했다. 그러나 짠내 나는 청춘들의 삶보다는 비현실적인 주거 공간에 가까웠다. 거주하는 사람들도 주거 공간이 아쉬운 이들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MBN 시추에이션 드라마 <연남동 539>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등장했다. 결혼을 하면 퇴거한다는 계약서까지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령대는 물론 직업도 경찰과 피트니스 클럽 대표 등 다양했다. 쉐어하우스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럽식 공동주택에 가깝고 그 실내 디자인은 고급스럽다. 어떻게 보면 쉐어하우스라는 새로운 트렌드 용어를 차용했을 뿐이다. 사실 방송에서 쉐어하우스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SBS <룸메이트>와 올리브TV <셰어하우스>처럼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했지만, 주거 공간이라기보다는 이벤트의 공간이었다. 

현실도 그렇다. 처음에 쉐어하우스는 청춘들의 대안적 주거 공간으로 등장했지만, 최근에 쉐어하우스는 공동주거실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각자의 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서 여러 명이 주거하는 방식으로 주거 조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여유로운 반독립적인 생활이 위협받는 쉐어 하우스의 현실이다. 이는 청춘들의 주거 환경이 더 악화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학생들의 이상적인 주거 공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공유 생활을 하는 개체적이면서 공동체의 형성이다. 그러나 학교는 기숙사 공간을 위해 수익을 내기 바쁘고 대학주변 임대업은 재테크의 수단으로 삼는다. 초기의 쉐어하우스도 청춘들보다는 수익모델의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대안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대중문화도 청춘들의 주거 공간을 소외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시골로 탈출하고 싶지만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이제 공공 정책이 나서야 한다. 청년의 주거권이 서야 국민의 주거권이 산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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