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광역시에서 발생한 데이트 폭력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머무를 정도로 논란이 됐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칫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데이트 폭력. 아직도 데이트 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구제에도 보완이 필요했다.

사랑으로 인한 싸움, 문제가 되다

데이트 폭력에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정의와 피해 유형이 있다. 데이트 폭력은 ‘연인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상호 간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의도로 행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말한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유형 기준에 따라 △통제 △심리·정서적 폭력 △신체적 폭력 △성적피해로 분류된다. 서경현(삼육대 상담심리학) 교수는 “데이트 폭력은 그동안 사랑싸움으로 인식됐다”라며 “심각한 피해사례가 늘어나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데이트 폭력은 일상에서 현저했고, 발생 건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데이트 폭력에는 폭행이나 성범죄 같은 중범죄 외에도 일상과 밀접한 사례들이 있었다. 지난 1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여성(20~60세)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5%가 일상에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적 폭력에는 ‘원하지 않았는데 몸을 만짐’이 44.2% △행동통제 사례로는 ‘누구와 있었는지 항상 확인’이 62.4% △심리·정서적으로는 ‘화가 나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음’이 42.5%로 가장 많았다. 한국여성의전화 통계자료에 의하면 데이트 폭력의 발생 횟수도 꾸준히 증가하여, 전체 상담 중 데이트 폭력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7년 27.7%에서 2016년 61.6%로 늘어났다. 부산광역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지방경찰정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에는 442명, 작년에는 590명으로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범죄자가 많아졌다.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폭력

데이트 폭력은 폭력과 친근한 표현의 차이를 혼동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강희영 연구위원은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경우나 성폭력만을 폭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이로 인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무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해자가 애인을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를 유발한다. 2015년 발표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들은 상대방을 주체적 존재로 인지하지 않고 대상화한다. 이로 인해 애인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데이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디어로 인해 폭력의 심각성이 흐려지기도 한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데이트 폭력 장면이 그대로 방송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작품에서는 강압적인 연인관계가 로맨틱한 것으로 묘사됐다. 때문에 대중은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행동이 크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인숙(건국대 여성학)前 교수는 “미디어에서 남녀 사이의 폭력이 낭만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라며 “이로 인해 주로 매체를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 끼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전했다.

피해자 구제 못하는 현실, 대책없나

현 법률체계가 데이트 폭력의 피해를 반영하기 어려워, 법률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법상으로는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피해자도 구제할 수 없다. 살인 등 강력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피해 정도에 못 미치는 경범죄 혐의를 적용받고,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집행유예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데이트 폭력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법안의 통과 임기가 만료돼 제정되지 못했다. 특별법 제정에 앞서 제시된 현실적인 대책으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데이트폭력을 다루자는 의견이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이 가정폭력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변신원 교수는 “데이트 폭력을 포함하기 위해서는 해당 법률의 대상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라며 “그러면 데이트 폭력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법률안 외에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부실한 실정이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가 성적 혐의가 아니라면 현재 운영되는 성폭력상담소에서 의무치료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피해자를 보호하려면 데이트 폭력 전문상담소가 필요하다. 허나 데이트 폭력 전문 상담소를 설치하기보다 기존 상담소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강희영 연구위원은 “별도의 상담소를 만들기보다는 기존 상담소를 지원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국가가 상담소의 인력을 보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호시설의 운영방식도 개선돼야 한다. 보호시설은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소다. 하지만 피해자가 격리됨으로써 일상에 어려움을 겪어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강희영 연구위원은 “가해자의 접촉을 막기 위해 피해자를 가두는 방식은 옳지 않다”라며 “피해자의 일상을 고려하여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폭력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는 것도 요구된다. 일상에서 가해지는 폭력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인숙 교수는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이른 시기부터 폭력에 대한 교육으로 자기 정체성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이후의 대처방안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변신원 교수는 “사후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알려야 한다”라며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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