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거주지가 없는 노숙인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부산광역시에서 추정한 거리 노숙인 수는 약 140명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노숙인 절반 이상이 치료를 포기한 상태다. 그들은 왜 아픔을 느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일까?

의료복지가 필요해

노숙인은 상당 기간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는 시설 노숙인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쪽방 거주민)으로 정의된다. 그들이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를 보장하고, 재활·자립 기반을 조성하고자 <노숙인 복지법>이 마련돼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노숙인 등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위해 노숙인 진료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노숙인의 13%가 의료 지원 서비스를 가장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도 참아야 한다

거리 노숙인 대다수가 질병을 앓고 있다. 작년 보건복지부가 노숙인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 조사에서 노숙인의 39.3%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나쁨’혹은 ‘매우 나쁨’이라고 답변했다. 질병으로는 고혈압,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이 가장 많았고, 상해가 그 뒤를 이었다.  

노숙인들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환도 겪고 있다. 위와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51.9%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우울증 평가도구(CES-D 11문항)’를 이용한 조사에서 거리 노숙인의 69%가 우울증이 유력하다고 분류되는 16점을 넘었으며,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은 70~80%이었다. 또한 조현병 초기 증상을 보이는 거리 노숙인도 많았다. 부산소망지원센터 이하형 부장은 “노숙인은 사회적 지지체계나 가족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라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숙인 10명 중 3명은 아플 때 병원에 가지 않고 참았다. 더불어 응답자의 39.6%가 아플 때 병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는 ‘병원비가 부담돼서’라는 답변이 72.6%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서 ‘병원에 데려다주는 사람이 없어서’,‘병원이 멀리 있어서’라는 답변이 나왔다. 

부족한 병원, 한정적인 치료

<노숙인 복지법>에 따라 부산광역시청(이하 부산시청)에서 지정한 노숙인 진료시설은 총 17곳이다. 그중 16곳이 구·군 보건소이며, 나머지 1곳은 부산의료원이다. 보건소는 진료 장비와 시설이 갖춰 있지 않아 만성질환, 감기 등을 진료하는 1차 치료만 진행된다. 노숙인이 그 외의 질병을 치료 받을 수 있는 병원은 부산의료원뿐인 것이다. 때문에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는 보건소를 제외한 지정 병원당 주거 취약계층을 포함한 노숙인 수가 1,602명으로 17개 광역시·도에서 2번째로 많다. 정부는 2019년까지 전국적으로 10곳의 노숙인 진료 시설을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노숙인 진료 시설 지정은 지자체의 신청으로 진행돼, 부산시청이 나서지 않는다면 추가 지정이 이뤄지기 어렵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현재 노숙인 시설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추가로 진료시설을 지정할 계획이 없다”라고 전했다.

노숙인은 진료의뢰서 발급을 통해 진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시 노숙인 진료 가이드>에 따르면 노숙인은 노숙인 시설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보건소에서 1차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건소가 노숙인을 2차 진료시설인 부산의료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랜 노숙 생활로 청결하지 않은 노숙인을 꺼리는 것이다. 또한 노숙인은 일반 시민과 함께 진료소를 이용하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산참여자치연대 김경일 간사는 “보건소와 부산의료원을 노숙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이 이용한다”라며 “노숙인을 향한 차별의 시선이 있어 노숙인이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병원을 꺼린다”라고 전했다. 

노숙인 진료시설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연제구에 위치한 부산의료원은 노숙인들이 주로 많이 있는 부산시 동구와 부산역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다. 부산희망등대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진현 부장은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2시간 이상 걸어서 이동하는 노숙인이 많다”라고 말했다. 

부산시에는 노숙인을 위한 정신 건강 지원 시설도 부족하다. 현재 부산대학교병원(이하 부산대병원)이 일반인과 노숙인을 대상으로 알코올중독 치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우울증 등 정신 건강 분야의 의료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부산대병원은 부산시청과의 업무협약으로 정신보건 분야의 사회복지사를 채용해, 작년까지 노숙인을 포함한 주거 취약 계층에게 상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정신보건 사회복지사에 대한 정원(TO) 확보 방침이 정해지지 않아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정신보건 사회복지사의 정원 문제로 사업이 중단됐다”라며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돈없는 그들, 의료비 지원도 못 받는다

노숙인은 진료의료서를 발급받거나 노숙자 의료 급여 1종을 통해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노숙인 의료 급여 1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해당 급여의 대상자가 되면 진료의뢰서를 끊지 않고 곧바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숙 기간이 3개월 이상이고 부양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시설 노숙인은 노숙 기간을 증명하기 쉽지만, 거리 노숙인은 그렇지 않다. 또한 노숙인의 과반수가 개인 부적응 혹은 이혼 및 가족 해체 등으로 노숙을 결정했기 때문에, 부양가족의 유무가 지원 기준이 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외 일반 의료 급여와 달리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지원 받을 수 있다 보니 부산시에서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은 보건소를 제외하면 부산의료원 1곳뿐이다.

노숙인 의료 급여 1종을 받더라도 의료기기 및 미지원 의학검사, 치과 진료 등 비급여 항목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거리 노숙인은 수입이 없어 외부지원 없이 치료를 받기 힘들다. 부산의료원은 노숙인에게 비급여 항목에 대해 일정 부분 지원해주기는 하지만, 보통 반년 정도가 지나면 예산이 모두 쓰여 지원이 중단된다. 보건복지부에서 ‘국민 건강보험 또는 의료 수급을 받을 수 없는 노숙인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의료비 예산을 확보해 보호해야 한다’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예산이 부족해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노숙인의 진료 여건 향상을 위해서는 진료 시설의 접근성이 강화돼야 한다. 현재 부산시의 노숙인 진료소는 노숙인이 많은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지정됐다. 김경일 간사는 “서울의 경우 노숙인들이 많은 쪽방촌 안에 무료 진료소가 있다”라며 “노숙인이 많은 곳에 진료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건소를 포함한 1차 진료소의 진료여건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현재 보건소 외에도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가 있지만 예산 문제로 의사가 없고 사회복지사만 근무 중이다. 이곳에서는 진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노숙인을 다른 진료시설로 안내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보건소 또한 보유한 의료 장비가 적어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더불어 공공진료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충분해야 한다. 공공의료시설은 의료비 지원 대상자를 많이 진료하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 힘들다. 지자체에서 공공의료시설이 적자 내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공공 의료시설은 수익이 나지 않는 노숙인 진료를 꺼릴 수 있다. 최송식(사회복지학) 교수는 “공공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시설에서 그 목적에 맞게 진료를 한다면 적자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이에 대해 시에서 합당한 지원을 통해 노숙인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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