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作
<골콩드>, 르네 마그리트 作

특이하게도 이 그림에는 바닥과 나뭇가지에 흐물흐물한 모양의 시계가 널려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일반적인 시계의 이미지와 달라 느끼는 의아함 속에 우연히 미(美)를 발견했다.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약 20년 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전쟁 이후, 참담한 현실에 실망한 예술가들은 현실 너머의 무의식을 바라보며 결국 초현실주의를 탄생시켰다. 이 용어는 1917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장 콕도의 무용극 <퍼레이드>와 자신의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을 설명하기 위해 ‘쉬르레알리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등장했다. 이후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과 1929년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해 명확한 형태를 갖췄다. 이는 문학과 예술에 한정되지 않고 △윤리 △종교 △정치에서도 다뤄지면서 하나의 이념으로서 확장됐다.

초현실주의의 기원은 입체파 운동과 다다이즘에서 출발한다. 입체파는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던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고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는 공간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시선을 부여했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전통과 질서를 파괴하는 운동으로, 이를 통해 콜라주와 오브제 등 새로운 표현법이 등장할 수 있었다. 창조와 탐구를 중시하는 초현실주의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정신분석가 프로이트의 학설에서도 영향을 받아,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가 중요시됐다. 현실을 초월한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미를 창조하려 했다.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친 것이다. 때문에 외관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이를 통해 호기심이 유발되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러한 의도로 표현한 화가에는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죠르지오 데 키리코 △르네 마그리트 등이 있다. 손일 화가는 “초현실주의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사물의 형태나 공간을 왜곡해 마치 환상적인 느낌이 나게끔 연출하는 사조”라고 말했다.

여기서 다양하고 새로운 표현 기법들이 창조됐다. △무의식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자동기술법’ △비논리적 상황을 표현하는 ‘데페이즈망’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함으로써 별개의 현실로 만드는 ‘콜라주’ 등이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서 시계가 녹아내리듯 배치됨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느낌을 준다. 또한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에선 모자를 쓴 신사들이 비처럼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용한 하늘에 ‘신사비’가 내리는 비논리적 상황을 표현했다. 모두 익숙한 대상을 엉뚱한 상황에 배치해 낯선 느낌을 주는 ‘데페이즈망’ 기법이 사용된 것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초현실주의는 절정을 맞이한다.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와 ‘초현실주의 국제 전람회’ 등은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간의 개별적 혹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초현실주의는 점점 분열돼 갔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가가 망명을 택해 초현실주의는 막을 내리고 만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인기는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현대 미술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만근 서양화 작가는 “현대에도 다변화된 모습으로 초현실주의가 나타난다”라며 “예를 들어 색감만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초현실주의와 미니멀리즘을 결합한 형태도 있다”라고 말했다.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예술과 결부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등의 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에도 영향을 미쳤다. 손일 화가는 “초현실주의를 통해 그동안 대상을 재연하고 재구성하는 형태의 미술에서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영역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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