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영 소설가

학생들과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최근 개봉한 정유정 소설원작의 <7년의 밤>부터,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 되었다는 <춘향전> 원작의 영화들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종류와 갈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이란 아마도, 탄탄한 스토리와 인물구성, 독자를 사로잡는 서사전개, 그리고 이미 확보된 소설 독자층의 탄탄한 지지일 것이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영화화하였다고 해서, 그 영화를 문학, 특히 소설과 비교, 대조하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 소설을 읽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영화 자체에 관심과 흥미가 있어 극장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먼저 읽은 관객이라면, 그 선후 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다. 활자로 묘사된 등장인물의 외모나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 타고 다니는 차 등이 살아있는 생명체로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평면화되어 있던 모든 것들이 입체적인 무언가로 탈바꿈하여, 걷고 먹고 뛰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제 머리속의 상상과 스크린 속 대상을 비교하게 된다. 흡족해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브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의 독일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열다섯 살 소년과 서른여섯 살 여인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소설은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다룬 1부와 법정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과 여자 주인공인 한나 슈미츠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는 2부,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교도소에 수감된 한나 슈미츠와 그녀에게 책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를 보내주는 남자 주인공 베르크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영화 속 한나 슈미츠는 케이트 윈슬렛이 맡아, 극의 전반을 이끌어 나간다. 남자 주인공인 베르크는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을, 각기 다른 두 명이 맡아서 연기를 한다.

<더 리더>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2부 법정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한나 슈미츠는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자들을 이송하는 중에 교회에 가두어 모두 불에 타 죽도록 한 혐의를 갖고 있다. 왜 그랬냐는 배심원들의 질문에 한나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감독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수용소 생존자들의 진술서를 읽은 다른 감독들이 자신의 죄를 부인할 때도, 한나는 제가 한 것이 맞다고 말한다. 초조함과 두려움, 공포감에 떨고 있는 한나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자신이 지은 죄보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이 탄로 날까 더 두려워하고 있는 한나는 나약하면서도 자존심 강한 한 인간으로 형상화된다. 

이런 그녀가 3부에선 녹음테이프를 통해서 글을 알게 된다. 한 글자씩 떠듬떠듬 글자를 읽게 된 한나는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된다. 영화 속 카메라는 그녀가 읽은 책들을 천천히 클로즈업한다. 그중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있다. 아렌트는 유대인들을 효율적으로 말살하려 했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개념을 정의한다. 악이란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 타인의 관점에서 사고할 줄 모르는 것’이며 그렇기에 악은 ‘평범성(banality)’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한나 슈미츠가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저지른 일과 행동에 대해, 그 일로 인해 숨진 무고한 유대인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영화는 그렇게 한나 슈미츠의 내면을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초췌하고 피폐해진 모습으로 참회하는 한나의 눈물을 통해 말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원작 소설이 말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담아내면서, 독자적인 예술작품으로 홀로 서게 된다.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했다는 꼬리표를 벗어 버리고 말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