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서서 뭔가를 고발해야 할 때 두려움이 따른다. 혹여나 보복이 있지 않을까,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또 다른 피해를 받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입을 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잘못된 ‘권력 구조’에서 기인했다고 폭로했다. 그동안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했으며, 갑이 범한 일을 참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을’이었다고. 이런 ‘을’들이 폭로함으로써 피해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대학에서도 이에 동참하는 자들이 나올 수 있었다. 명지전문대, 청주대, 세종대 등에서 양상이 보였으며, 이들은 대학 사회에서 그동안 존재했던 권력 구조를 낱낱이 드러냈다.

지난 12일, 우리 학교에서도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나섰다. 한 교수가 수년간 성추행·성희롱을 일삼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피해 사실에 귀 기울이는 사회적 분위기 덕분인지, 용기를 얻은 또 다른 피해자들이 그에 동참했다. 헌데 이들의 발언은 조금 미묘했다. 가해자의 악행을 들춰내면서도 동시에 모두 ‘부끄럽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저 방관했고, 그 이후에는 침묵해야 했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부끄러워한 사람들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2016년 ‘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학내 성범죄 사실을 학내에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중 다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봐서’, 침묵을 유지했던 것이다.

이 또한 대학 사회에 숨겨진 권력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여기서도 갑과 을의 관계가 현저했다. ‘갑’인 교수는 학생들의 성적에, 일부 학과에서는 취업과 진로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 있으므로 문제 해결을 포기한 것이다. 교수의 잘못된 행동에도 학생들은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반대로 무지했다는 이유로도 계속해서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끝끝내 교수의 악행이 고발됐다 해도, 교수는 이를 억누르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가해자는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했고, 피해자 스스로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시된 교수가 ‘가해자’임은 분명하다. ‘부산대학교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성희롱의 기준은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해당 교수는 ‘의도적인 추행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원치 않는 신체접촉과 언어적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피해자의 증언은 가해 사실을 증명해준다. 심지어 학과 내부에서는 그 교수 ‘양옆에는 남학생이 앉’아야 하는 매뉴얼도 존재할 정도였다. 그 교수의 변명 또한 이를 방증한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으며, 그저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라는 말은 도리어 신체 접촉 등이 있음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교수는 현재 연락이 되지 않으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잘못된 구조를 타파하고자 부끄러움을 무릅쓰지만 정작 부끄러워야 할 교수는 권력의 그늘에 숨어있는 꼴이다. 피해자의 노력이 무색하지 않도록 가해자는 권위를 내세운 자신의 행동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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