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까만 봉투와 알록달록한 파우치는 여성들의 생리대를 숨겨준다. 이렇게 인류의 절반은 살아가는 동안 약 500차례 피 흘리는 사실을 숨긴다. 왜 여성들은 생리한다는 사실을 감춰야 했을까? 영화 <피의 연대기>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생리의 모든 것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영화 <피의 연대기>에는 지하철 좌석의 시트가 생리혈로 흠뻑 젖었던 실제 사건을 묘사한다.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갑작스럽게 생리가 터져 당황한 나머지 문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이에 한 커뮤니티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아으 더러워’, ‘그걸 못 참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들은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해당 여성에게 질타를 가한 것이다. 더구나 생리하는 여성들마저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영화 속 한 여중생은 “처녀막으로 막혀있어 탐폰을 사용하기 위해선 뚫어야 한데요”라고 말했다. 이 여학생은 처녀막이 순결을 증명한다고 믿고 있었다. 

두 사례는 ‘생리’와 ‘여성의 몸’에 대한 무지함을 보여준다. 남성뿐 아니라 왜 여성마저 자신의 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무지는 오래된 가부장제와 남성 위주의 사회가 여성을 침묵하게 한 결과이다. 기득권이었던 남성은 안정적인 사회를 지향해 성별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이에 생리는 여성만의 것으로 치부됐고, 은밀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됐던 것이다. 결국, 사회는 오래된 침묵으로 인해 잘못된 통념이 쌓인 창고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 여성은 현재 탐폰, 생리컵에 익숙하지 않고 사용 경험도 드물다. 삽입방식의 생리 도구가 미지의 영역이 되면서 이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를 사용하면 처녀막이 파열된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여성들은 처녀막의 유무로 순결을 검증받아왔다. 처녀막이 파열된다면 순결을 잃는 것이며, 순결함에 부합하는 것이 여자의 도리라는 시선이 아직도 존재한다. 많은 여성은 ‘그들이 말하는’ 처녀막을 지키려 했다. 이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순결을 인정받아야 했던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 자신의 몸을 솔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정받고 평가받는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불편한 옷을 입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돌이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맘에 드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몸에 맞는 생리 도구를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샤를로테 로쉬의 <습지대>에는 ‘나는 우선 내 점액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맛이 나는지를 알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의 화자처럼, 여성은 타자에 의해 정의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직접 알아나가야 한다. 한 사람의 생각 변화가 점차 확대된다면, 결국 공적인 자리에서 ‘생리’를 편안히 얘기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여성의 몸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지적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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