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봉 생태 터널을 지나 언덕을 내려갔더니 한적한 어촌이 있었다. 주민들은 △대항마을 △대항새바지△외양포를 대항부락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락의 입구는 ‘From here to the sky’라고 쓰인 비행기 조형물이 있었다. 흘러나오는 ‘내 고향 가덕도’ 노래의 가사와 어울리지 않는 비행기 모형에 고개를 갸웃하며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의 악재가 되다

지난 9일에 대항마을은 흐린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짓다 만 건물이 높게 치솟아 있었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들이려는 논의가 이뤄지던 시절, 신공항 유치 이후 보상을 노린 외지인들이 마을에 지어놓은 건물들이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철골과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천 조각들이 마을을 대표하는 듯했다. 대항마을 황명우(58) 통장은 “신공항 들어선다 카니까 외부인들이 보상받으려고 쓸데없는 건물을 짓는 거라”라며 “200명 남짓 사는 마을에 다세대 주택이 뭣 땜시 들어와요”라고 한탄했다. 정치 잘 모른다며 신공항에 대한 의견 내기를 꺼리던 박 모(73) 씨도 “마을이 옛날이랑 많이 달라지니까네 맘이 아픈 거지”라며 조심히 말을 꺼냈다.

대항마을은 여느 시골 지역과 비교해도 많이 낙후돼 있었다. 마을 안의 건물은 △항구 앞 횟집 △동네 슈퍼 △해양파출소 △주민들의 집뿐이었다. 황명우 통장은 마을이 이렇게까지 낙후된 이유를 토지거래허가구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토지의 투기적인 거래가 우려되는 경우에 지역의 땅 투기를 방지하려 지정되는 곳이다. 대항부락은 신공항 후보지로 논의되던 지난 10여 년 동안 토지거래허가구역이었다. 이로 인해 부락은 건물이 들어오기 까다로운 곳이 됐다. 주민들은 대항마을이 어촌이라는 특색을 살려 관광지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 제한에 막혀 개발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작년 2월, 가덕도 신공항 계획의 무산으로 토지거래허가 제한이 풀렸지만 직접 찾아간 대항마을은 여전히 발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한이 풀린 뒤, 황명우 통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부산광역시청을 찾아가 마을 개발을 요구했지만 ‘순차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 실제 추진된 것은 없었다. 황명우 통장은 “신공항 후보지라 캐가지고 다 막아뿐다 아입니꺼”라며 “토지거래허가 나도 지난 10여 년 동안 낙후된 마을은 누가 보상합니꺼”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신공항이 들어온다면 주민들은 ‘속수무책’

부락 사람들은 대대로 어업에 종사해왔다. 주민들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거나 공터에 앉아 그물을 손질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신공항이 들어선다면 그들은 바다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점심을 먹고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던 김현준(50) 씨는 “고기 잡는 젊은 사람들은 신공항 다 반대할 낍니더”라며 “한창 돈 벌어야 하는데 이주해가 뭐 먹고 살라카는지 모르겠습니더”라고 전했다.

대항새바지와 대항마을은 하나의 도로로 이어져 있다. 신공항이 들어선다면 그 도로를 따라 활주로가 만들어진다. 활주로는 주민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뚫고 지나가버린다.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보상논의는 당시 가덕도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음에도 지지부진했다. 대항마을 인근 산에서 산불감시원을 맡고 있는 김영수(67) 씨는 “가덕도가 최종 후보지로 됐다케도 보상얘기는 안 들리데”라며 “제대로 보상이 안 되면 촌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가 도시에 가 삽니꺼”라고 걱정했다.

대항새바지에는 조그마한 항구가 있다. 그런 항구에 어울리는 등대가 있고, 밧줄로 메어진 고기잡이배들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가덕도 신공항의 초기 계획은 항구의 앞바다를 매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매립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공항 부지가 확대됐다. 계획이 변경되는 동안 부락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아무런 소식도 전달받지 못했다. 황명우 통장은 “공항이 사람 사는 곳을 뚫고 지나가는데 설명회 한번을 안 한 거야”라며 “우리가 요청하니까 그제야 세, 네 명이 왔더라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습니꺼”

신공항에 관한 의견을 묻는 말에 부락 사람들은 대부분 코웃음을 쳤다. 자신들이 꾸려온 삶의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는 문제임에도 시큰둥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던 중 옆에서 가만히 듣던 주민이 한마디 했다. “들어오긴 합니꺼”. 그들은 신공항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 대항새바지 항구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서인길(69) 씨는 “선거철 되니까 하는 소리 아입니까”라며 “이제는 안 믿습니더. 그냥 우리 원래 살던 대로 살랍니다”라고 전했다. 황명우 통장은 이런 상황을 ‘정치쇼’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부락 사는 사람이 정치쇼에 동원된 거 아인교”라며 신공항을 재 언급하는 정치권을 비꼬았다. 이제 그들에게 신공항 논의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그저 정치인들의 속임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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