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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공공조형물, 다시 빛날 수 있나
  • 곽령은 기자
  • 승인 2018.03.11 05:53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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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꽃의 내부>. 세계적인 조각가 데니스 오펜하임의 마지막 유작이었던 <꽃의 내부>는 이제 용광로 속으로 사라져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작년 12월, 녹슬고 파손된 <꽃의 내부>를 해운대구청에서 무단 철거한 것이다. 이 사건은 공공조형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참사라며 큰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해운대구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지금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공공조형물의 현실은 어떠할까?

이미지 개선에 너도 나도 설치

우리 주위에서 <꽃의 내부>와 같은 공공조형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공조형물은 △조형시설물(공공시설 안의 회화, 조각, 공예 등) △환경시설물(벽화, 분수대 등) △상징조형물(상징탑 등)을 일컫는 말이다. 공공조형물은 일반 시민들이 예술을 더욱 가까이 접할 수 있게 해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 또한 삭막한 도시환경에서 이미지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들이 건립하고 있다.

공공조형물의 수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에 따르면, 1980년대 74점이었던 전국의 공공조형물은 1990년대 288점으로 늘었다. 2010년 이후 건립된 조형물만 1,066점에 이른다. 각 지자체가 공공조형물 설치의 이점에만 주목해 경쟁적으로 건립했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시의 공공조형물은 시유지에 설치된 것만 515개에 달한다.

부산시 연제구에 위치한 공공조형물

건립도 관리도 문제

현재 부산시는 구 마다 관련 조례가 마련되지 않았고, 무분별하게 건립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부산시청과 △부산진구청 △해운대구청 △남구청에 조례가 존재한다. 나머지 13개 구·군은 별도의 조례 없이 부산시청의 조례를 준용하고 있다. 현행 규정상 주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도 누락돼,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있다. 금정구청이 약 6억 1000만 원을 들여 설치한 7점의 공공조형물 중 ‘긴 여정 북극곰’은 주민들로부터 구와 관련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작품 공모 당시 구를 상징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금정구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정구청 관계자는 “올해 공공조형물 관련 구 조례를 제정할 예정”이라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검토 중이다”라고 전했다.

공공조형물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속적인 관리와 보수를 받지 못해 훼손되는 공공조형물이 많은 것이다.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지저분한 공공조형물도 있었다. 이는 철거를 요청하는 민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태풍 차바로 인해 일부 파손됐지만, 적절한 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던 <꽃의 내부> 역시 철거 요청 민원이 제기됐다. 이에 공공조형물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운영체계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담당자 교체 주기가 짧아 업무에 대한 이해도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2013년 부산시청은 <시민모니터제>를 통해 시민들에게 직접 공공조형물의 훼손 상태나 환경 정비 사항을 제보받아 관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 이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당시 실효성이 없어서 중단된 것 같다”라며 “담당자 교체가 빈번해 사업의 내용과 취지 등의 파악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차량통행 등 지역민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주는 공공조형물도 존재한다. 2016년 부산시 동래구가 부산 도시철도 동래역 2번 출구 인도에 설치했던 대형 조형물은 통행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조형물 바로 옆에 마을버스 정류소까지 위치해 보행자들의 부딪힘이 잦았다. 명륜 1번가를 홍보하기 위해 설치됐던 이 조형물은 결국 11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이전됐다.

금정구와 연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긴 여정 북극곰’

공공조형물 관리·건립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으로 지자체의 인식 부족이 꼽힌다. 공공조형물은 하나의 예술작품이지만, 실질적으로 지자체나 지역주민에게 그렇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 해운대구 공공조형물의 설치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는 공공조형물 철거 시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있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은 심의를 거치지 않고 <꽃의 내부>를 무단 철거했다. 이에  지자체가 공공조형물을 예술작품이 아닌 행정상 처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지적이 있다. 송만용(동서대 디자인학) 교수는 “관리 주체들이 공공조형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를 처리해야 할 일로만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도태근(신라대 창업예술학)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비판받아야 할 것은 지자체가 작품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파손을 이유로 무단 철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시민의 인식도 부족한 실정이다. 부산현대작가협회 성현섭 회장은 “공공조형물을 예술작품으로 보지 않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라고 전했다.

공공조형물에 광고를 붙였다 떼어낸 흔적이 남아 지저분해 보인다

모두의 ‘공공’조형물 되려면

공공조형물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인식과 관리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공공조형물 건립 시, 높은 이해도와 명확한 관리체계가 요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황무현(마산대 아동미술교육) 교수는 “공공조형물을 설치하기 전에 △설치 장소 △작품의 기획 의도 △사후 관리방안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태근 교수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 주체를 비롯한 체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우리 사회의 공공조형물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지자체의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송만용 교수는 “공공조형물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려주는 교육이 부족한 것”이라며 “지자체는 공공조형물에 대한 교육과 홍보에 힘써야 한다”라고 전했다.

<꽃의 내부> 사태로 큰 물의를 빚은 부산시청은 이 같은 불상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조례의 미비점을 보완할 예정이며, 공공조형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 중이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공공조형물을 건립할 때뿐만 아니라 이전, 해체 시에도 심의를 거치도록 조례가 개정된다”라며 “시유지는 물론 16개 구·군 소유 땅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전수조사가 완료되면 새로운 공공조형물 리스트를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통행 방해의 문제로 이전된 동래구의 공공조형물

곽령은 기자  emily38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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