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씨앗> (감독 임태규 | 2017)

전공의폭행사건, 군부대내폭력사건,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한동안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사안들이다. 모두 특정 집단에서 오랫동안 대물림되어 온 폭력이다. 이는 인권을 중시하는 현 대에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영화 <폭력의씨앗>은 이러한 조직내 폭력이 자연스럽게 싹 틔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일병 주용(이가섭 분)의 하루를 따라간다. 주용은 폭력의 피해자다. 선임의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거친 손길에 불안한 눈동자를 굴릴 뿐이다. 그러던 중 후임 필립(정재윤 분)이 군가혹 행위를 고발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상병은 필립과 그를 감싸는 선임 주용을 번갈아 가며 폭행한다. 주먹은 필립의 이를 부러뜨리고서야 멈췄다. 필립의 부러진 이를 치료하기 위해 치과의사인 매형을 찾아간 주용은 그곳에서 또 다른 폭력을 목격한다. 주용의 누나 주아(김소이 분) 역시 남편의 폭행과 강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화는 푸르딩딩한 주용의 등, 벌겋게 부어오른 필립의 입, 그리고 시커멓게 멍든 주아 의 볼을 차례로 비춘다. 폭력을 겪고 목격해온 주용은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말을 듣지않는 필립의 뺨을 후려치며 매섭게 몰아세우는 그의 모습은 가해자와 다를 바가 없다. 영화는 주용 의 주먹질에 필립의 이가 부러지면서 끝 이 난다.

주용이 겪은 가정폭력, 군가혹행위 이외에도 우리 주위에는 온갖 폭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어디서, 어떻게 뿌리내리는 걸까.눈 하나 깜빡하 지않고 주먹을 휘두르는 그들은 처음부터 가해자였을까.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도 가해자 중에서는 주용처럼 피해자였던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목격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이 겪었던 것을 그대로 자녀에게 행한다. ‘맞으니까 정신을 좀 차리네’, ‘맞으면 확실히 애들이 빠릿빠릿해지거든’. 가해자들은 이렇게 폭력을 그들의 문화로 합리화 하고 은폐한다. 그 수면 아래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엄격하게 나눠진 갑을 관계에서 피해자는 ‘을’이다. 피해자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목소리 내는 것을 포기한다. 대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합리화한다. 그리고 ‘갑’의 위치에 올라서면, 자신이 당했던 것을 되풀이한다. 결국 무기력한 피해자는 가해자를 증오하고 혐오하면서, 동시에 가해자의 행동과 가치관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폭력은 자연스레 스며들어 생명력을 이어간다. 지금도 폭력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발아되고 있다.

이런 폭력은 종종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고통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폭력의 민낯이 조금씩 드러났지만 상황은 별다를 바 없다. 지금도 교육, 문화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행해진다. 최근 신임 간호사의 죽음으로 논 란이 됐던 ‘태움’ 역시 엄격한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에 있다. 그러나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질긴 폭력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한 첫 걸음은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 ‘자연스러운 것’이라 칭할지라도. 깊게 박힌 그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악순환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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