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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여 명의 시민 국권수호를 외치다
  • 배현정 기자
  • 승인 2018.03.04 07:07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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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국권을 수호하자” 1898년 3월 10일, 121년 전 서울의 그 날은 힘찬 민중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로 거리에는 1만여 명의 민중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갓을 쓴 양반, 땋은 머리를 한 소녀, 한 손에 태극기를 쥔 농민, 관모를 쓴 벼슬아치, 장옷을 두른 부녀자들, 각기 다른 신분이 하나 돼 러시아의 이권침탈에 열렬히 저항했다. 서울 종로에서 그들은 하나였고, 그곳에서 처음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이들의 집회는 1898년 봄부터 겨울까지 계속됐다.

19세기 말, 조선의 러시아 이권침탈은 절정이었다. 1898년 3월 7일 오후, 러시아로부터 24시간 이내에 회답을 달라는 장문의 협박 외교 문서가 도착했다. 위 문서에는 조선정부가 러시아의 원조와 군사교관, 재정 고문을 원치 않는다면 즉각 대응하겠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이에 독립협회는 러시아의 간섭을 배제할 기회로 여겨 즉각 원조거부의 입장을 러시아 측에 밝혔다. 이후 독립협회는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민중 집회를 계획했다.

3일 뒤, 독립협회는 시민, 단체회원, 정부 관료 등 모든 시민이 참여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에서 쌀장수인 평민 현덕호가 회장으로 추대됐는데, 그는 한성부 종로의 백목전 다락 위에서 약 1만 명의 시민과 함께 시위했다.   러시아의 침략 정책인 부산 절영도조차, 한러 은행개설 등에 반대했다. 이에 고종은 민중의 뜻을 받아들여 러시아 공사 측에 고문과 사관을 철수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그리고 이틀 뒤, 독립협회의 개입 없이 최초로 민중의 독립적인 만민공동회가 개최됐다. 수만 명이 참여한 자리에서 민중들은 국권 수호와 이권반대 운동을 위한 연사를 외치며 많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냈다. 정부는 민중의 열렬한 운동에 민의를 받아들여, 러시아의 군사교관과 재정 고문을 정식으로 면직시켰다. 이어서 러시아도 민중의 힘과 각국의 반응에 한러은행을 폐쇄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가 주최한 민중동원 집회로서 최초의 근대적 정치집회로 평가된다. 이에 왕현종(연세대 역사문화학) 교수는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개혁요구를 주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독립협회의 개입 없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첫 민중집회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신용하(울산대 사회과학) 석좌교수는 “12일 민중집회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시발점”이라고 의의를 전했다. 

배현정 기자  feliz_ing@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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