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단어가 있다. 지난 9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국민청원 글에서 촉발된 ‘낙태죄’다. 듣자 하니 두 달 사이에 낙태죄 폐지 청원이 23만 명의 서명을 얻었다고 한다. 사실 이미 2월부터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형법> 269조와 270조)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었으니, 그 기점이 그리 최근은 아닐지도 모른다. 일단 법 조항에 대한 판단은 헌재에 맡겨두려 한다. 그보다도 낙태(인공임신중절)의 실태를 알고 싶은데, 공식자료는 7년 전에 머물러있다. 이라도 살펴보자면 당시 국내 낙태 건수는 17만여 건. 전문가들은 비공식 건수를 포함하면 실제 50만 건은 될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더 적은 수치가 나오리라 기대하긴 힘들다. 작년에 발표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조사>가 방증한다. 처음 성관계를 경험한 청소년의 평균나이가 13세고, 임신을 경험한 여학생 중 70% 이상이 아기를 지워버렸다. 피임 실천율은 절반이 채 안 된다. 청소년은 아직 성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라서 그렇다 치기엔 뭔가 찜찜하다. 초·중·고등학교 의무 성교육 시간이 1년에 15시간이란다. 그러니 못해도 초등 6년 동안 90시간의 성교육을 받았을 텐데 왜 이들의 성생활은 불안하게만 느껴질까.

2015년에 교육부가 6억 원 들여 만든 ‘성교육 표준안’ 꼴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둥, ‘성폭력을 피하려면 이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둥 괴상한 논리투성이다. 이런 ‘표준’이라 배우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성 가치관을 성립할 수 있으랴. 피임법에 대해서도 배우지만 단순 소개에 그칠 뿐이다. 겉핥기에 그친 성교육만 받고 있으니 위 조사결과가 단박에 이해된다. 한편으로는, 성교육 표준안이라 할 것도 없던 시절의 10대를 보냈던 우리네는 지금의 청소년과 크게 다를까 싶다. 이십 대가 돼서도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가지지 못해 성교육 영상을 따로 찾아봐야 했던 필자만 해도 그렇다. 교육기관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배워야 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성에 대한 교육기관의 방임은 자행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성의과학’ 수업 논란만 봐도 그렇다. 해당 수업을 들었던 한 수강생은 교수의 ‘남자는 성관계 과정에서 비이성적이니 여성이 챙겨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웃으며 넘어간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수강생들은 다수의 몰카 사진이 담긴 수업자료로 교육받아야 했다. 그러나 양성 비하적 발언을 듣고 불법 수업자료에 노출된 학생들의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교수들의 수업행태를 언론에 제보한 수강생들을 향했다. 화살촉이 전혀 다른 곳을 향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퍽 난감하다. 비난하는 학생들을 온전히 개개인의 무지라 비판할 수 없다. 대학교육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이런 발언이 들리는 판에 ‘배우지 못했다’고 욕할 수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게 교육의 산물인 것을.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