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과 2014년 두 차례 덴마크의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이 나라 대학이 학생들을 철저히 보호하고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대학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상처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성적평가를 들 수 있다. 대학에서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시험답안지에 이름 대신에 행정실에서 부여한 고유 식별 번호를 기입하도록 한다. 이와 더불어, 답안지에 대한 채점을 두 사람이 한다. 한 사람은 강의담당자이고 다른 사람은 외부 인사이다. 만약 두 사람의 평가 결과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평균을 내고, 차이가 크면 두 사람이 조율을 하게 되는데 이때 주도권은 강의담당자가 아니라 외부평가자에게 있다.

또 다른 예는 학생들의 의견이 학교운영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나라의 대학에는 대부분 교수, 학생, 직원으로 구성되는 학과운영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이 위원회에서는 학과의 운영 전반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학생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사와 관련해서는 폐지되기를 희망하는 과목, 새로 개설되었으면 하는 과목에 대해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한 강의계획서에 대해서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이를 학생위원이 위원회에 회부해서 논의할 수 있다.

학교에서 철저히 보호받기 때문에 이 나라 학생들은 겁내는 것이 없고 주눅 들어 있지 않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교수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당당하다. 이 나라에 살면서 우리나라에서 흔히 듣는 교수의 학생에 대한 ‘갑질’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지금까지는 주로 학생들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교수나 직원들도 역시 잘 보호 받고 있다. 대학도 일종의 직장인데 이 나라 직장은 근로자를 끔찍이 챙긴다. 직원이 다칠까, 심리적으로 상처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코펜하겐 대학의 경우 대부분 아침 8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비해 근무여건이 너무 좋다. 또한 대학 본부에 스트레스 관리사 4명을 두어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돕고 있다. 이 대학에는 학과 단위에도 행정 책임자가 있는데 그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학과에 있는 교수나 직원의 안전과 건강관리다.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관리자의 모습이다. 이 나라에서는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을 매우 존중한다. 덴마크의 직장상사는 철저히 직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상사가 직원을 만나면 늘 격려한다. 격려와 칭찬은 이 나라의 브랜드 네임이다. 직장에서 상사는 늘 직원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부하직원과 할 얘기가 있으면 전화로 오라 가라 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조용히 부하직원의 자리를 찾아가 시간이 되는지 확인하고 얘기를 나눈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인권유린을 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교수가 학생을 ‘하인’처럼 부린다는 얘기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조차 발생한다. 직장에서는 근로자들이 너무 거칠게 다루어지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상처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직장인들 사이에 근로계약서를 노비 문서에 비유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나 ‘좋은 사회’를 이루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김 없이 경제성장만 추구하는 사회는 기울어진 건물 같아서 지속가능성을 갖기 어렵다. 국민소득 1달러를 높이는 것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이글을 맺는다.

박세정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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