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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회 부대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탈출
  • 김유림(국어국문학 16)
  • 승인 2017.11.27 15:38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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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딘가요.

이렇게 멍청한 질문도 또 없겠어요. 설령 안다고 해도 대답도 못하는 사람한테 무얼 물을까. 삭신이 쑤셔요. 얼마나 험하게 다뤘으면 저리지 않는 곳이 없어요. 그 쪽은 더 결리겠어요. 나는 그래도 밧줄이기라도 하지, 학생은 그 무슨 쇠사슬도 아니고. 이 쌍놈들이 뭣 때문인지 나는 이렇게 던져 놓고는. 똥통에 코부터 빠질 새끼들. 나도 나지만 어쩜 저렇게 젊은 애를.

뭔 미친년 보듯 쳐다보고 앉아있어요? 그럼 얌전히 흙무덤에 절 파묻어 주소, 하고 누워있을까. 요 탁자 위에 손톱깎이 있으니까 한 번 넘어트려나 보려고. 밧줄 요게 엔간히 질긴 게 아니긴 한데, 그래도 여기 요 손만 좀 뜯기면…….

아, 땀난다. 아우, 쑤셔. 겨우 잡았네. 저 쪽으로 또 굴러갈 건 뭔지.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겠네. 지금 잘 되고 있어요? 그래, 다행이네요. 꼴은 우습게 되었지만. 줄이 그렇게 굵은 것도 아니라서. 어쩌면 흙 속에 나란히 파묻히기 전에 뜯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정신을 잃은 게 몇 시간 쯤 되었어요? 두 시간? 세 시간? 더 많이? 크게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개새끼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진다는 것도 아니니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오히려 부재했던 만큼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

학생은 몇 살쯤 되었어요? 스물 초반? 스물 중반? 아녜요? 그럼 스물 후반? 아이구, 그럼 학생도 아닐 건데 내가 괜히 막 학생이라고 그랬네. 학생이 워낙 어리게 생겨서 그래요. 아니지. 서른 넘어서 학교 다니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고. 그런 사람은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아니, 나도 학생인데! 이럴 거 아녜요. 그리고 대학원인가 그것도 있고. 그러니 계속 학생이라 부를게요. 내가 너무 제멋대로지요? 그래서 신랑이랑 만날 싸우고 그래요. 이럴 거면 혼자 살지 왜 날 만나고 그래! 신랑이 이러면, 나는 나 혼자 살라고 했는데 자꾸 당신이 결혼하자고 했잖아! 그러고. 그럼 신랑은 그건 그래, 하고 말아요. 애아빠가 많이 순하거든.

학생이 자꾸 낯이 익네. 애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언제쯤인가, 하도 비가 많이 내려서 마고산이 허물어진 거 기억나요? 아마 삼 년 전 쯤이었을 거야. 그 때 죽은 사람이 없었던 게 큰일이지. 근 몇 년 간 세상이 너무 변했어요. 산 주위에 아무도 살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 마고할매는 그저 마고할매로 살아갈 뿐이고. 마고산 몰라요, 마고산? 내가 뉴스를 보고 있었을 때도 밖에선 비가 퍼붓고 있었어요. 그 때 죽은 사람이 없었던 게 다행이지. 근 몇 년 간 세상이 많이 변했지요. 그 날 내렸던 빗줄기가 지금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날 빗방울에 왜 그리 날이 서 있었는지 모를 일이야. 그 비에 생채기가 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거예요. 그 날 비가 몹시 내렸지.

시답잖은 소리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아유. 나 살아야 되는데.

애가 아직 많이 어려요. 왜, 애가 어린 게 그렇게 신기해요? 그럼 그 애가 첫애라고 하면 기절초풍하겠네. 느지막한 나이에 결혼해서 그래요. 말했잖아, 나 혼자 살 생각이었다고. 애아빠가 나한테 꽃다발을 안겨주지만 않았더라도, 그게 하필, 고게, 샛노란 수선화만 아니었어도 내가 진희를 볼 일이 없었겠지. 신랑이 수선화를 있지요, 돈도 없어서 그걸 비니루에 싸지도 못하고 그 날 조간신문에 둘둘 말아왔는데, 어쩌다보니 그 가난뱅이랑 결혼을 했지 뭐예요. 난 신랑보다 잘난 사람이었거든. 게다가 신랑이 나보다 나이도 많이 어렸고. 그런데도 결혼을 했지 뭐야. 결과적으로는 잘 했지. 신랑은 평생을 나 잘난 거 시샘 하나 않고 살았지요. 나는 시집살이 같은 건 안 한다, 이렇게 딱 선 그었을 때도 당신 하고픈 대로 하시오, 하고 만 양반이야. 불붙이는 것도 제대로 못 하니 나한테 아침밥일랑 바라지 말라고 하면 내가 요리를 꽤 하니 잘 만났소, 그러고 말았지. 그 세월에 그런 말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느냐고. 그렇지. 빨간 비니루 하나 못 구한 게 미안해서 그걸 뒤로 숨기고 우물쭈물하던 사람이었으니.

그래서 나 정말 살아야 되는데. 또 살 거고. 애가 많이 어리거든. 걔 결혼하는 거는 보고 염라대왕이랑 술이라도 주거니 받거니 해야지. 날 닮아서 결혼 안 한다고 하니, 어찌 될라 모르겠지만. 결혼 안 한다고 하면 안 하는 거고. 싫다는 처녀 억지로 짝지어주면 평생이 눈물 바람이오.

그러니까 학생도 그, 많이 신경 쓰지 말아요.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학생 자, 울지 말고 나 봐봐. 이런 상황에서 수치를 아는 게 오히려 대단하지. 수치스럽다는 걸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내가 아직 사람이구나 싶은 거야. 사람이 수치를 못 느끼면 그 때가 제일 수치스러운 순간인 거거든. 그 때는 이제 나라고 부를 만한 게 없는 거예요. 내가 없으면 윤리도 없고. 괜찮아. 정말이야. 냄새도 얼마 안 나니까. 똥도 아니고. 똥이면 큰일 나지. 똥독이라도 오르면 답도 없고. 그거는 약으로도 안 나아요. 그런데 오줌은 급할 때 물 대신 마시기도 하니까 똥이랑은 급이 다른 거지. 그리고 어렸을 때, 지도 한 번씩 다 만들고 그러잖아.

이거 보이지요? 이제 요것만 더 뜯어내면 학생이랑 나랑 나갈 수 있는 거야. 우리 애가 많이 어려. 신랑이야 차릴 사람 없다고 밥 굶는 그런 위인은 아니라 걱정이 안 되는데, 우리 애는 그래도 어리니까. 내가 직접 밥 차려준 건 몇 번 안 된다고 해도. 그리고 나 같은 나이 먹은 여자는 어린애들을 지켜줘야 하는, 그런 게 있어요. 학생은 또 그 놈들 얼굴 봤다고 했잖아요. 나는 못 봤거든. 그러니까 내가 학생을 위해서라도 이걸 꼭 풀어야 돼. 학생도 어리잖아. 나한테 대면 학생은 이제 갓 태어난 거나 다를 바 없지. 왜, 이건 너무 과장인가. 학생은 참 낯이 익어.

손이 좀 저리네.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애. 나는 피 안 통하면 안 되거든. 좀 많이 돌아다녔다 싶으면 대번에 다리가 퉁퉁 부어요. 남들보다 잘 붓지. 그러니까 이게 살이 아니라 붓기에요, 붓기. 애 낳고 나서 이 붓기가 영 사라지질 않네. 왜 고개 저어요? 나 살 안 쪘다고? 고맙기도 해라.

학생 지금 몇 시예요? 내가 고개를 돌릴 수가 없네. 목이 좀 뻣뻣해가지고. 왜 이리 몸이 무겁지. 그래도 나 한창 때인데.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는지. 나도 사서고생이라니까. 독한 년.

 

학생. 학생.

봐. 나 다 풀었잖아. 이제 우리 곧 나갈 수 있는 거예요. 아, 이거?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학생이 갑자기 고개를 꺾기에 혹시라도 뭐 잘못됐을까 놀라서……. 아이고, 땀 좀 봐. 많이 지쳤나보네. 곤히 자고 있어서 나도 깨우긴 싫었는데 여기가 우리 집 아랫목도 아니고 해서. 나중에 우리 집 아랫목에서 학생이 자면 몇날 며칠은 깨우지 않고 가만히 둘게. 지금 내가 테이프 때면 아프겠지만 놀라지는 마요. 좋은 꿈 꿨지요?

테이프도 다 불어터졌네. 이건 또 뭐람. 아니 그 쌍놈들은 학생 입에 뭣하러 재갈까지 물려놨는지. 학생이 개도 아니고. 하기야 무는 개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위험할 때도 있는 법이니. 목 움츠리지 말아요. 부끄러워할 게 또 뭐 있겠어요. 틀니 빼듯 쑥 빼면 되는 건데. 아파도 조금만 참아요. 이게 너무 커서 빼내기가 빡빡하네. 입술 다 터진 것 좀 보아. 테이프 좀 조심해서 뜯을 것을.

아. 소리 내봐요. 아.

학생 웃는 걸 보니 정말 그 나이대로 안 보이네. 꼭 어린애 같아. 시원하지요? 이제 나가서 그렇게 웃고 다녀요. 아까처럼 울지 말고. 그래서 우리 잡아온 놈들 얼굴은 어떻던가요?

왜 그래요, 학생. 땀을 왜 갑자기 이렇게……. 학생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문제 있어요? 말을 해봐요. 학생, 학생. 아아, 하지 마. 왜 그래요? 응? 왜 그러냐니까. 그렇게 벽에 박아대면 사람이 살이 아니라 쇠로 되어있어도 부서지지요. 뭐가 문제예요, 학생?

말을, 못하겠어요?

아, 해봐요. 크게 아.

이도 참 고르고 예쁜데. 왜 말이 안 나온다는 건지 모르겠네. 잇몸도 빨간 게 예쁘고.

아.

학생.

그런데 왜 혀가 없지요?

 

끌려오는 중간에 정신을 잃은 거지요? 나도 지금 온 몸이 결리는데 학생은 결리지 않는 곳이 어디 있었겠어요. 있어서 이는 통증들이 아우성거리니 없어서 이는 통증을 채 느끼지 못한 걸 거예요.

학생 들어보아요. 사는 게 가장 중요해요. 혓바닥? 그거 하나 없어도 사람은 어떻게든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죽으면 혓바닥이 붙어있다고 해도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알아요. 내 세월에 여자들은 혓바닥을 잘리곤 했거든. 그 뿐이 아니야. 우리는 죽어있었지. 종종 혓바닥이 달린 것들이 있긴 했지만 시체들 중에 혓바닥이 달렸다는 게 그리 큰 덕은 아니었지요. 오히려 혓바닥이 달렸다고 멸시를 당하며 살아온 게 내 세월이었어요. 너는 왜 여자가 되어서 혓바닥을 자르지 못하느냐, 그런 것이지요. 그럼 뭐가 중요하냐. 살아있는 거, 그게 그 시체들 중 가장 큰 덕목이었던 거예요. 무수히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한 그걸 나는 알았어요. 그래서 그 흙무덤을 헤쳐 나와서, 요 붙어있는 혓바닥을 놀리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거지. 또 이 혓바닥으로 수백을 살리게 된 것이고. 학생, 내 말 잘 들어요. 혓바닥이 중요한 게 아녜요. 살아있는 거, 그게 중요한 겁니다. 혓바닥은 결코 내가 될 수 없어요.

나 돈 많아요. 살아서 사람을 살렸기 때문에 얻은 돈이 많아요. 이것을 인연이라고 하는 것도 우습지만 학생이 살아가길 바란다면 내, 어떻게든 도와줄게요. 적어도 학생이 굶고 살지는 않도록. 그리고 바람 안 스미는 집 아랫목에서 잘 수는 있도록. 자, 크게 숨 들이쉬고, 내뱉고. 옳지. 학생이 울면 심장이 화끈화끈해요. 어린애들 눈물은 늙은이들 것과는 다른 뭐가 있나 보지요. 삽시다. 살아야 억울할 때 울 수도 있는 거예요. 날 믿어요. 아직 학생에게는 멋스러운 이랑 잇몸이 있으니까.

우리 진희를 보면, 우리 손녀를 보면 그걸 알 수 있어요, 내가.

당장은 나갈 수가 없어요. 아까 현관문을 살펴봤는데 잠금쇠가 안쪽에 달려있지 않더라고요. 불알을 터뜨려버릴 새끼들. 응? 왜? 아, 내가 너무 상스러웠나. 그러고 보니 그 새끼들이 년인지 놈인지도 모르고 막 내뱉었구먼. 혓바닥을 잃을 뻔한 세월을 보낸 년의 편견인가. 가랑이에 뭐가 달려있다고 해서 다 그걸 놀리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르는 것도 아닌 것을.

사람들이란 어쩜 제 항아리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는지.

 

그런데 남자였지. 그건 분명한 사실이라. 아. 뇌가 흐물흐물하네. 머리가 멍멍해서 좀 누워야겠어요.

 

내 죄요. 난 어렸을 때 잠자리며, 나비며, 무당벌레며, 암튼 날개달린 놈들은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거든. 그런 놈들은 날개를 떼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손톱만 한 것들이니 그 짐승들 괴롭힌 대가도 손톱만한 것인 줄 알았던 게지. 날개 잃은 것들이 날짐승이 아니라 들짐승이라도 되는 냥 바닥에 꿈틀거리고 있으면 그게 어찌나 우스웠는지 알 수가 없어. 날짐승 지옥으로 떨어지면 나는 날개를 얻고 말거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진희한테 언제 박쥐 동화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하도 오래 전 이야기라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학생도 아마 잘 알겠지. 박쥐가 자기한테 유리할 때마다 날짐승인 척, 들짐승인 척 하는 이야기. 그런데 진희가 딱 나한테 이렇게 물어보더이다. 그래서 박쥐는 원래 날짐승인가요, 들짐승인가요. 나는 코딱지보다도 재미없는 할매인지라 이름부터 쥐 사촌 쯤 되는 것 같으니까 아마도 들짐승이겠지,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딱 진희가 박쥐가 불쌍하다고 말하데요. 내가 왜, 하고 물으니까 원래 들짐승인데 날개가 있다고 날짐승 취급 받은 게 불쌍하다고. 날개는 박쥐가 아니니까. 자기 같으면 날개를 꺾어서라도 들짐승인 냥 살 텐데, 하고.

그러니까 내가 날짐승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 놈들이 내 어깨 죽지에 날개 한 짝씩 달아줄 터요. 그럼 나는 그걸 꺾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날짐승들의 지옥이란.

진희는 내 딸이 아니요. 아니, 딸인가. 아니요. 딸이 아니지. 걔는 내 손녀요. 아니, 딸이지. 그게 뭐가 중요하려고. 나는 혓바닥을 제 손으로 잘라낸 마고할매, 그 애는 제 날개를 스스로 뜯어내지 못한 박쥐. 차라리 거기에 동굴이라도 있었다면 진희는 어찌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그 산에서 죽지만 않았더라면. 왜 나는 내 혓바닥을 굳이 잘라내어 깨어난 그 애를 봐야만 했는지.

잠이 와요.

 

학생, 학생. 왜 그래요. 그렇게 몸부림치지 말아요. 살 다 헐어요. 혹시 내가 어제 헛소리 같은 걸 하던가요? 신랑이 언제는 그러데요. 당신은 왜 이따금씩 섬뜩한 헛소리를 다 하고 그러오. 꼭 모르는 곳에 버려진 사람 보는 것만 같으오. 사실 나는 그런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제 학생한테 헛소리를 했는데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요. 으구, 정말 내가 그랬던 거지요? 학생 많이 무서웠지요? 늙어서 그래. 머리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입술은 헐겁거든.

진정된 거지요?

오늘은 이 집 좀 뒤져보려구. 그 흉물스러운 개줄 같은 걸 끊어낼 만한 게 있을까 해서. 학생 몸에 감고 있는 거 말이야. 오줌도 다 말랐네. 냄새는 안 나도 참 시릴 거예요. 아직 완연히 봄이 피지 않아서 그래요. 바람도 아직 어둡고. 나는 봄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코가 막혔지 뭐예요. 그 뒤로 나는 봄을 잘 모르겠어.

집이 생각보다 넓어. 내 목소리 들려요, 학생? 아, 안 들리는가부다.

 

학생. 여기 뭐가 좀 이상해요.

집이 넓어도 너무 넓어. 이 거실이랑 부엌이 다가 아니에요. 방이 세 칸이나 더 있어요. 화장실도 두 개나 돼. 수도꼭지를 틀어봤는데 맑은 물이 이렇게 콸콸콸콸 쏟아져 나와요. 바싹 마른 수건 대여섯 개도 선반에 포개져 있고. 하기야 저렇게 묶여있는 상황에서 욕실이 다 뭐람……. 어떻게, 내가 물이라도 좀 끼얹어 줄까요? 아니다. 그러다 잘 안 말라서 녹이라도 슬까 함부로 못하겠네. 쇠독이라도 앓으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요. 조금만 참아 봐요. 집이 넓어서 다 찾아보지는 못했는데 이렇게 넓으니 뭐라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는 정말로 이상하지요. 막 소름이 온 몸으로 퍼져 올라오는 게……. 여기는 사람이 살던 집인 게지. 사람이 살던 집이라고. 저 안쪽 방에는 자개옷장 세 개가 덜렁 있는데, 하나는 솜이불 한 채가 들어있더라고. 모란꽃이 누벼진 거. 솜을 오랫동안 안 탄 모양인지 그리 볼썽사납더만요. 그 한 채가 덜렁 들어있데요. 냄새를 맡아보니 얼마 전만 해도 쓴 거야. 꿈꿈한 늙은이 살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게. 햇볕 쨍쨍할 때 밖에다 이불을 널어주면 볕내가 가득 배는데 요즘 사람들이 그걸 안 해. 고약한 세제나 탈탈 털어 놓고 말지. 나도 요즘 사람이나 다를 바 없는 년이지만 코가 예민해서 이불 하나는 바지런히 햇볕에다 말렸거든.

다른 옷장에는 낡은 남자 양복이 나프탈렌이랑 걸려 있고. 와이셔츠 뒷목이 제대로 안 빨린 게 여자 없이 혼자 사는 홀아비 집인가 싶기도 해요. 학생한테 한 짓을 보면 그 새끼들이 외로운 홀아비 잡아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요단강에 던져놓은 건 또 아닌지 싶어. 걱정돼서 죽겠어. 나머지 옷장은 텅 비어있고. 그게 다야. 원체 깔끔한 양반이기라도 했는지 자질구레한 건 짚 바구니에 담아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났더라고요. 그 방이 어찌나 쓸쓸한지. 그리 휑한 방에 어쩐 일로 화장품도 하나 있던데 냄새는 안 맡았어요. 내가 남의 남자 살 냄새 맡으면 뭐에 쓸까 싶어서.

다른 방은 애 방인가 보더라고요. 애는 또 어디 갔는지. 방문을 살짝 열기만 했는데도 아휴, 그 공주님 그려진 벽지를 이렇게 보기만 했는데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게. 홀아비도 그렇고, 애도 그렇고, 무사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살아있기만 하면, 나는 그렇기만 하면 참 좋겠어. 책상에 애 사진도 있던데 내가 심장이 뛰어서 그 쪽으로는 아예 고개도 못 돌리고. 책상 서랍에 혹시 열쇠나 뻰찌 같은 게 있을까 싶어 막 뒤지기만 했지. 근데 없더라고요. 그거, 이상하게 다행스러우면서 가슴이 막 미어지는 거야. 나이 먹은 양반들이 애들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가 그걸 못해. 우리 늙은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아등바등 덤이라도 얻어 볼까 애들 방에서 열쇠를, 뻰찌를 찾고 있는 마당이니.

나머지 하나는 그 홀애비 서재인가 싶데요. 그 쪽이랑 저 바깥 욕실 쪽은 엔간히 복잡스러운 게 아니라 뒤지다가 쉬러 나왔어요.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부엌 쪽을 안 가봤네. 목이 바짝바짝 타는 걸 이제야 알았어. 나는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어머 뜨겁네, 하고 그냥 죽을 년이야. 학생도 목 타지요? 씹을 수 있는 주전부리라도 뭐 있었으면 좋겠는데. 냉장고 한 번 열어볼게요. 크기도 커라. 우리 집은 아직도 양문형 냉장고가 아닌데.

학생.

그런데 여긴 도대체 뭘 하는 곳일까요. 보여요? 냉장고며 선반이며 꽉 차 있는 거. 그것도 우유나 과일 같은 건 없고 상하지 않는 것들밖에 없어요. 여기, 냉장고에는 반찬통 같은 것도 없어요. 비닐봉지, 팩 포장, 통조림, 뚜껑 따지도 않은 케첩이랑 마요네즈. 냉장고를 싹 비우고 새로 채워 넣기라도 한 것처럼. 냉동실에는……. 이것 봐요, 이거 보라구요. 갈은 고기며, 아이스크림이며, 말린 버섯이며, 냉동 만두며……. 유통기한 지난 것도 없어. 뜯은 흔적이 있는 것도 없어. 여긴 도대체 뭘 하는 곳이고, 우린 여기에 도대체 왜 오게 된 걸까요.

이 낡은 집에서 이 냉장고는 어찌 이리도 번쩍거리는 건지. 내가 낡은 곳에 떨어진 것인지 새 것에 떨어진 것인지. 내가 익숙한 것을 보고 있는 건지, 생경한 것을 보고 있는 건지. 그리고 이 와중에 학생 얼굴이, 그 얼굴이, 나는 왜 이렇게 생생하게 익숙할까요. 학생 얼굴만은 어째서 확신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얼굴만. 어떤 이유로 나는 분명 학생을 기억하고 있어요.

학생은 대체 누구에요?

 

마고산 앞자락 쪽이 무너질 정도로 퍼부은 비였어요. 그 비가 내 삶을 바꿔놓았지. 비 이전의 세상은 고요한 혼란이라. 비가 오고 산이 무너지고 나서야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 중간을 부유하던 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갔지요. 퍼렇게 멍이 들어 썩기 시작한 삼 년이 기어코 도려내지고. 비와 함께 산이 무너지면서 실재가 드러났어요. 죽는다는 것은 차가우리만큼 희어. 거기에는 송장벌레가 꼬여 있고, 짓물러 나온 물이 있고, 채 삭지 못한 옷가지와 뭉근한 살덩이도 붙어있어요. 혓바닥이 없으니 듣는 게 아녜요. 보는 것이지. 희망도 아니고 절망도 아녜요. 죽는다는 것은 흙더미 속에 파묻혀있던 뼈다귀일 따름이지. 조금도 거창하지 못하지만 그 자체로 끔찍한.

나의 딸은 딸을 남기고 납골당 귀퉁이에 몸을 위탁해버리고 말았고, 그 딸이 그곳에서 멀지 않은 마고산 앞자락에 드러눕게 되었지. 그걸 누가 알았으려고. 그리도 가까운 곳에 나란히 누워 있었을 것을 누가 알았으려고. 자기가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지. 그리고 멍이 들어 뭉근하게 썩어버린 살점을 내가 내 스스로 도려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지. 그래서 내 삶에 삼 년이 부족해요. 나는 더 이상 봄을 맡을 수가 없지요.

마고할매 전설을 아는가요. 여신이었다가 미천한 괴물이 된 년, 제 손톱보다도 작은 사내가 쏜 화살에 맞아죽은 년 사연을 학생은 아는가요. 설마 그 화살이 여자를 죽였으리라고. 사내는 결코 그 여자를 죽인 게 아녜요. 여자가 제 세월을 거둬드린 게지. 당신을 숭배하던 혓바닥으로 토악질을 해대는 그 사내를 보며 이제 제 세월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혓바닥을 잘라내고 죽은 것이지. 사내가 할매를 죽였다는 건 진실이 아녜요. 진실은 마고할매의 잘려나간 혓바닥이야.

그리고 죽음은 진희의 뼈다귀이고.

 

학생.

낯이 익군요.

 

이걸 봐요, 학생.

그 날은 봄이었어. 흰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체육복 가방. 엊그제 미장원을 갔다와서 목 언저리에서 살랑거리는 똑 단발. 밤색 원피스, 겨자색 카디건, 까만 운동화. 사실 나나 그 애나 그 카디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밥을 먹다 말고 원피스 앞섬에 김칫국물을 흘려 어쩔 도리가 없었지. 원피스 색이 어두워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거기에는 얼룩이 있었어. 그리고 까만 스타킹. 그 애는 정말 스타킹을 신고 있었어. 정말로. 그러니 당연히 속옷도 입고 있었지. 그 애 나이는 열 셋이었고 또래 중에 유달리 키가 커서 종종 그 애를 고등학생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었어. 그러니 그 애는 정말 스타킹을 신고 있었고 속옷도 입고 있었지. 학생, 자네는 그 애 앞섬에 묻은 김칫국물을 보았나? 아니. 보지 못했을 거야. 자네는 그 애의 카디건은 벗기지 않았으니까.

그 애는 봄이었어. 생일도 삼월 중순이었어. 그러나 그 애는 다시 생일을 맞지 못했어. 그 애는 무수한 미련에 붙들려 있었지. 그 날도 봄이었다네. 그 애가 귀신 세상을 떠돌다가 겨우 저승사자 옷자락을 움켜잡게 된 것은. 그 애에게는 진실로 죽는다는 것이 시작이었을 거야. 학생, 내 남편이 고기를 끊은 것도 봄이었어요.

이걸 봐요, 학생.

주방에는 부엌칼커녕 감자칼도 없었어. 칼이 나온 건 바깥 쪽 화장실 선반 깊숙한 곳이었지. 켜켜이 쌓인 수건들 사이로 칼이 삐죽 나와 있었어. 화장실에서 나는 오랫동안 많은 것을 고민해야 했다오. 인륜은 타인의 숨을 빼앗지 못하게 하는 법이나, 나의 윤리는 그렇지 않거든. 나는 자네의 숨을 빼앗을 충분할 권리가 있어. 여기서 말은 필요 없네. 삼 년이었어. 모두가 자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질 않았어. 마고산은 사람이 없지. 그래서 자네와 그 애가 함께였던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 산으로 들어간 것을 누구도 보질 못했어.

그 애의 스타킹과 속옷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왜 웃지요, 학생. 내 꼴이 우습소? 우스울 만도 하지요. 학생이 그리 숨어버릴 때까지 나는 넋을 놓고 있었으니까. 진희는 살아있었어. 살아서 골방에 갇혀서 할매, 할매, 울부짖고 있었지. 그 애는 산에 누워있었건만 나는 아득한 능선 너머에 걸려있는 골방에서 그 애를 찾았네. 아니면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 애를 찾기도 했지. 그 애는 그 날 그렇게 죽어버린 것을, 나는 결코 알지 못했어.

학생을 다시 찾기에도 삼 년이 걸렸고 나는 그 사이 쭈그렁 늙어버렸지요. 학생. 나는 정말 돈이 많다오. 그래서 그 날 학생에게도 많은 돈을 보냈지. 진희 값이었어. 그러나 그 돈이 제 값을 한 것은 육 년이 지난 후이구먼.

이걸 보아요, 학생.

이 열쇠는 우리 서재에서 찾아낸 것이야. 학생 몸을 죄는 그 줄을 풀 열쇠를 나는 우리 서재에서 찾아내었어. 그건 내 남편 서재가 아니라 나와 내 남편의 서재였지. 씨씨티브이도 제대로 없던 때였어. 서재 벽에는 커다란 지도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오. 우리는 진희가 사라질 만한 곳을, 자네가 진희를 데리고 사라졌을 법한 곳을 사인펜으로 긋고 또 그었어. 그리고 그 곳을 찾아 헤매었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마고산에서 멀리 벗어나질 못했어. 산의 중력이 우리를 붙들어놓고 있었던 거야.

 

학생. 나에게는 지금 열쇠와 칼이 있다네. 혓바닥이 없는 웃음은 덧없구먼. 그 때도 자네는 어른이었을 테지. 스물 초반이었을 테니 나이는 어른이었을 테지. 어른은 아이들을 지켜야하는 윤리가 있지요. 법전에 적힌 무수히 많은 글자들은 별 의미가 없고, 어른이 아이들을 지켜야한다는 그것만이 의미가 있지. 나는 그것을 왜 이리 늦게 깨달았는지 모를 일이야. 그 때 자네도 정말 어른이었는가.

그 애를 죽일 것이면 그 애의 어깨에 달린 허망한 날개라도 떼어주지. 아니요, 아니요. 내 죄요. 나는 어렸을 때 너무 많은 날짐승들의 날개를 뜯어내었소. 그래서 내 혈육들은 다 날개를 단 들짐승이 되고 만 것이지. 그래서 이승도 저승도 아닌 세계에서 부유하다 겨우 저승사자 옷자락을 붙잡은 게지. 그 애 엄마도 참 많이 앓다 죽었다오. 식물처럼.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비명을 지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요. 이 근방은 산 밖에 없거든. 그 애를 잃고 남편과 내가 이사 온 이 집은 마고산 주변에 있소. 마고산 주변에는 사람이 살지 않지. 그렇다면 저 발자국 소리는 학생에게 크게 득이 될 게 못 될 텐데. 이쯤 되면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이 집이 정말로 밀실이라 생각하나? 안쪽 화장실에는 열린 창문이 있소. 그 창문에서는 완연히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학생도 봄 냄새를 맡지 못하나보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부탁한 시간은 사흘이었지. 삼년이 아니라 사흘. 학생과 나를 가둬놓는 것은 고작 사흘. 육 년을 갇혀 있던 내게 삼 일은 조금도 버겁지 않으오. 학생은 또 모르겠으나. 나는 밧줄을 풀어냈고, 칼도 찾아내었고, 또 열쇠도 찾아내었으며, 문은 곧 열리겠지. 여건만 된다면 자네와 함께 삼 년은 보내고 싶었지만, 적어도 삼 주는 그리 보내고 싶었지만 몸뚱이가 늙고 병들어 자네와 더 있을 수가 없어. 학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오. 자네에게 좀 더 오랫동안 고약한 시즙이 흘러나오는 희망을 선사해주고 싶었거든.

그리 떨지 마오. 아까처럼 계속 웃으오. 자네의 눈물은 이상하게 내 심장을 화끈거리게 만들지만 그 웃음은……. 나는 자네가 그렇게 떨며 우는 꼴이 보기 싫어. 웃으오. 웃으오. 울음은 자네에게 가당치도 않은 덕이니. 설마 그 찰나동안 나를 그리도 믿었나. 그래도 크게 원망치는 마시게. 나는 정말로 학생을 기억하지 못하였으니까. 말했다시피 내 머릿속에는 곰팡이가 만개하였거든. 나의 삶에서 시간은 뒤틀려있어. 나는 어린애고, 처녀이고, 아줌마고, 늙은이지. 봄볕을 제대로 쬐지 못해 삼년 전에 고인 비가 그대로 썩어버려 그러오. 이건 고의가 아니요. 학생이 내게 육 년 동안 그러하였듯이.

 

문이 열리고 있네.

 

**

 

대충은 그렇게 된 거지.

그 늙은이들이 찾아온 게 아마 육 년쯤 된 것 같은데. 사람 둘 찾아달라고 하더라고. 돈이야 얼마든지 주겠으니 사람 둘 찾아달라고 하는데, 하나는 여자애고 하나는 젊은 남자야. 여자애 말이지, 나는 걔를 적어도 고등학생으로 봤는데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기함을 했다니까. 이게 누굽니까, 내가 물으니 할배는 눈물만 주루룩 쏟는데 그 옆에서 할매가 냉랭하게 말하더라. 내 손녀랑 내 손녀 잡아간 놈이요. 내 손녀는 죽었을 수도 있고, 그 놈은 살아있을 거요. 내가 그리 돈을 많이 주었으니 꼭꼭 숨어있을 거고, 얼굴을 갈아엎었을 수도 있소. 그래서 내가 그렇게 돈을 많이 주었으면 일단 외국으로 튀지 않았겠느냐고 했거든. 그러니 딱 말없이 책상에 돈다발을 얹으며 이러는 거다. 찾으면 재산의 반을 주겠소. 나야 도망간 필리핀 년들 찾아내는 거에 이골이 난 새끼니 뭐 더 할 말이 있겠냐. 믿어주십쇼, 하고 절 한 거지.

그 할매가 뭘 하는 할매인지는 도통 모르겠는데, 그 새끼에 대한 온갖 걸 다 들고 오더라고. 아마 다른 쪽에도 다리를 걸쳐서 서로가 물고 온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더라고. 상도덕이 없는 늙은이지. 시발, 경쟁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똥구멍에 불붙더라. 그 할매가 재산의 반이라고 들고 온 통장에 영이 몇 개인지 네가 봤어야 했다. 엔간히 멍청한 할매면 혓바닥 좀 놀려 홀라당 먹겠는데, 또 시발 배운 년이에요. 계약이며 법이며 모르는 게 없어. 온갖 한자말을 줄줄이 읊는 의심병자한테 내가 뭘 뜯어먹겠냐는 거지. 그리고 월급이라며 꼬박꼬박 넣어주는 돈이 한두 푼도 아니었고.

그러다 비가 온 거다. 봄비가 그리도 사납더라. 금정산 앞자락이 다 무너져서 거기에 파묻힌 손녀 시체가 발견된 거지. 그 할매가 손녀 찾은 김에 그 놈 찾는 것도 그만 하자고 할까봐 불안해서 밤마다 베개 섶을 다 적셨어요, 내가. 근데 할매가 그 다음 날 당장 찾아와서 책상에 돈다발을 뿌리며 말하더라. 이제 곧 그 새끼가 나타날 테니 그만 두질 말라고. 나야 그 패기에 눌려 좆빠지게 쫒아 다녔지. 그리고 꼭 이 년 만에 그 새끼를 찾았다. 그것도 금정산 부근 빌라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에 살고 있다가 다시 돌아온 건 얼마 안 되었더라. 소식을 뒤늦게 접했는지. 참, 그 와중에 돌아온 그 새끼도 소름끼치지 않냐.

나는 곧장 할매가 그 새끼 멱이라도 딸 줄 알았는데 봄까지 기다리자고 하더라고. 근데 이게 아끼다 똥 된다고 할매가 노망이 났어. 그 전에도 살짝 헛소리하는 게 노망 끼가 있긴 있다 싶었지. 근데 그 말라비틀어진 양반이 내가 혀라도 좀 굴린다 치면 멱이라도 딸 것처럼 굴어대니 아주 노망났다고는 생각 못했지. 그러다 그 놈 새끼 찾은 딱 몇 주 뒤에 할매가 그러더라고.

자기가 치매인 것 같다고. 그것도 좀 진행이 된 것 같더래.

근데 내가 미치겠더라고. 돈 못 받을 줄 알고 그런 게 아니라, 시발 몇 년 동안 할매 밑에서 일하다 보니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막 안타까워. 그 할매, 힘들긴 좆나가게 힘들었다. 그 새끼 못 찾고 눈 감은 할배도 할배지만 할매가 고생 많이 했어. 근데 치매야. 이게 얼마나 좆같은 일이냐. 그래서 내가 봄이고 나발이고 당장 그 새끼를 이등분하러 가자고 하니, 할매가 그래도 봄까지는 기다려보자고 하더라. 자기가 아주 정신을 놓더라도 내가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준비를 해두었으니 걱정 말라고. 다만 하나만 꼭 부탁하자고.

봄에 그 새끼 혀를 자르고 가둬달라고. 자기랑. 그 봄에.

덧없는 희망을 그 새끼한테 가르쳐주고 싶다며. 그것도 선의에서 우러나온 한 점 티끌도 없는 그 희망을 짧게나마 그 새끼에게 가르쳐주고 싶다며. 그러며 치매에 걸린 게 얼마나 시기적절하냐며 웃는 거야. 여자는 무섭지. 그리고 늙은 여자는 아주 무섭고. 맞다. 늙고 똑똑한 여자가 제일 무섭다.

치매에 걸렸으니 할매는 그 새끼를 얼마간은 딱하게 여겼을 거야. 정말로. 그리고 그 새끼는 할매한테 많이 의지했을 테고. 제 딴에는 자기를 탈출시켜줄 것 같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느냐는 말이야. 할매 자체도 그리 모진 양반이 아니거든. 아니지. 오히려 다정한 양반이야. 젊은 때 좋은 일도 많이 한 것 같고. 뒷조사 해본 적이 없어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제 세상에 갇혀 외골수로 늙어버린, 그런 노인네는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지, 그 할매.

그런 노인네가 진심으로 딱하게 여겼으니 그 새끼 애간장이 남아나겠느냐고. 살살 녹아내렸겠지. 그래, 그래서 내가 딱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새끼가 막 울어. 혀도 없이 으으으 하고 막 애처럼 울더라. 자기도 혹시나 했겠지. 설마. 혹시나. 이 인상 좋은 늙은이가 설마 혹시나. 내가 그 새끼 우는 앞에서 대가리에 빵꾸난 것처럼 쪼갰다. 그 애가 살아오겠지. 설마. 혹시나. 정말로 그 애가 죽었을까. 늙은이와 나도 삼 년을 그렇게 보냈어. 우리도 탈출하고 싶었다고, 그 멍멍이 같은 현실에서.

결국 어떻게 됐냐면…….

몰라, 인마. 짜장면이나 마저 처먹고 하자고. 뭐냐. 뭘 눈을 까뒤집고 쳐다봐. 확 젓가락으로 눈알 쑤셔 버릴까보다. 시발,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살이에서 머니머니해도 머니 이즈 베스트이긴 한데, 딱 보면 알지 않냐. 이 삐까번쩍한 사무실에서 짜장면 주워 먹는 우리를 보면 짐작이 안 가느냐고. 한 푼도 안 받은 건 아니고, 몇 푼 챙기고 몇 푼은 그냥 남 주고 그랬지. 내가 잡아온 필리핀 년들 몸값에도 몇 푼 쓰고.

확. 눈 예쁘게 안 뜨냐. 좋은 말로 할 때 흰자랑 검은자 비율 맞춰라. 네 새끼는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밥 처먹는 사장한테 몸을 꽈대십니까. 아오, 쌍놈의 새끼. 시발, 내가 네 때만 해도 이렇게 기어오르면 바로 박살났어, 박살. 어? 대가리가 예쁘게, 요렇게 톡 쪼개졌다고. 그래서 내가 대가리 박살난 놈들을 얼마나 많이 치웠는지 모른다. 내 왕년 별명이 미스터 수박통이었다니까. 근데 우리 좆같은 후배님은 아직 대가리가 박살나지 않으셨으니까 그 박살나지 않은 대가리를 굴려서 한 번 생각해보시라고요. 그 새끼가 어떻게 되었을지. 대가리 안 돌아가는 새끼. 같은 돌이면 맷돌 본 좀 받아라. 그게 좀 돌린 거냐. 아니 너는 짐작이 안 가느냐고. 그 할매가 그 새끼를 얌전히 죽일 것 같으냐? 그 약속도 잘 지키는 노인네가.

 

헛된 희망 품고 말라죽어가는 걸 보겠지.

날개 달린 들짐승처럼.

김유림(국어국문학 16)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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