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국가기록원과 부산시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가 부산시의회에서 열렸다. 부산지역에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치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모든 광역지자체는 지방기록물관리기관(지방 아카이브)을 설치하여 가치 있는 지방기록을 보존하고 이를 시민에게 서비스해야 한다. 이에 근거하여 경남기록원이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고, 서울기록원이 2018년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그런데 부산시는 아직 이렇다 할 계획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불법 상황이 10여 년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예산 때문이라고 한다. 국고지원 없이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립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질은 재정문제보다 입장에 있다고 본다. 부산시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는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의 업무가 국가기록원이 해야 할 보존업무를 분담하는 것이며, 대부분 국가사무에 속하기 때문에 국고 지원 없이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재정지원은 필요하겠으나, 과연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 국가의 업무를 대신하는 기관인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선언문에서는 기록의 가치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기록은 행정 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뒷받침하는 권위 있는 정보원이자 증거다. 기록을 통해 누가 어떤 결정을 했고 예산은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시정의 전모를 알 수 있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기록을 철저히 수집하고 관리하여 공개할 때에 비로소 구현된다. 둘째, 기록은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보존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지식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업무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산되는 기록에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업무지식이 담기게 된다. 더 나아가 장기간 사회적으로 축적된 기록은 집단기억의 표현물이며 그 사회의 정체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캐나다 국가기록원이 개최한 전시회 제목은 “캐나다 - 우리는 우리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였다. 기록이 그 사회의 집단기억의 투영물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제목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산의 기억’은 누가 남기고 누가 보존해야 하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기록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중앙과 지방이 다를 것이다. 지자체가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지방기록은 국가기록의 변두리를 면하기 어렵다. OECD 국가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자체 기록물관리기관을 가지고 있다. 뉴욕, 런던, 북경, 동경과 같은 도시는 100여 명의 전문 인력을 갖춘 기록물관리기관이 있으며 소장 기록의 규모나 수준도 상당하다. 이들 대도시가 기록물관리기관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방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기록을 수집·서비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개헌까지 논의되는 시점에서 부산시는 ‘기록자치’의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할 것이다. 그 나라의 수준은 ‘숲’과 ‘아카이브’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일류도시인지를 가늠하는 잣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시는 아직 하류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부산과 부산시민이 걸어온 길은 물론 부산시정의 역사를 보여주는 ‘창’으로서 부산기록원의 설립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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