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세간에 화제가 된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아픔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 사랑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힐링(Healing)’ 이야기다. 필자도 이 드라마를 봤다.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에 필자의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이야기와 마음 한편에 깃드는 대사가 있는 프로그램. 이를 만드는 방송작가가 멋있었다. 그 기억 속의 모습에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방송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막상 보게 된 방송작가들의 현실은 처량했다. 방송프로그램은 그들이 자신의 행복을 떼어 만드는 것 같았다. 그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 등으로 팍팍해진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이었다. 화려한 방송 이면에서 발견한 그들의 근로환경은 이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있었다는데 죄책감까지 느끼게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수록 해결에 집착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해결방법은 명확했다. 취재원들은 하나같이 표준 제도의 마련, 관리·감독 강화 등을 역설했다. 이상했다. 모두가 이를 알고 있고 환경 개선이 논의되고 있지만 문제는 지속됐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그것들이 아니다. 필자에게 각인된 것은 국회의원이나 고용노동부 직원에게서는 듣지 못한 말이다. 이상하리만큼 현직 방송작가를 취재하면서만 들었던 단어가 있다. 방송작가유니온의 이향림 작가는 “작가들이 자존감을 회복해야한다”고 취재의 마지막에 덧붙였다. 또 한 명의 방송작가는 취재를 모두 마치고 “그동안 너무 물 흐르듯 살아왔네요. 자존감이 너무 없었나 싶고…”라는 말을 남겼다. 방송작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뿐만 아니라 왜 문제해결이 더딘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 답은 ‘자존감’이란 단어에 있다.  

필자가 생각건대 해결책을 말함과 동시에 방송작가들의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가 논의돼야 한다. 방송작가들의 낮은 자존감은 분명 환경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방송작가들의 근로여건을 위해 노동조합이 출범하고, 고용노동부의 근로환경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방송작가의 근로 개선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방송작가들도 스스로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례라며 외면하던 부당 사례에 대해 방송작가들도 적극적으로 개선의지를 보여야 한다. 나는 방송작가들이 본인이 만드는 프로그램만큼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방송작가가 스스로를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토로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당신도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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