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포항에서 벌어진 지진으로 인해 시민들이 대피하고 수능이 연기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끔찍한 천재지변이었지만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고 더욱이 이전의 여러 사건과는 대비되는 정부의 대처가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의 피해 사례들을 보면,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안전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몇몇 건물의 외벽과 기둥이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드러난 모습은 부실 공사의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고 지적받고 있으며, 지진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대피하지 말고 현 위치를 지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들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안전 불감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엄청난 사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919년 1월 15일 따뜻한 정오, 미국 보스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춥기로 유명한 미국 동부이지만 전날에 비해 21도나 치솟은 기온 덕분에 이날은 유독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도 하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있었죠. 그런 보스턴의 북쪽에는 퓨리티 디스틸링 사의 사무실과 창고가 있었고 그와 함께 무려 높이 15미터, 지름 27미터의 거대한 당밀 탱크가 놓여있었습니다. 15미터라고 하니 별 것 아니어 보일 수 있어 덧붙이자면 15미터는 대략 4~5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이 탱크 속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수입된 당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사탕수수로 만드는 당밀은 짙은 갈색의 끈적끈적한 액체로, 럼주에서부터 구두약까지 다양한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점심을 먹고 있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울리며 들려오는 으르르르- 하는 수상한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잠시 후에는 탕타탕탕탕-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니 지진이나 전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법도 하죠. 얼마 후, 거대한 당밀 탱크는 탱크를 고정하는 나사 대부분이 총알같이 날아 가버린 채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양면이 무너져 내렸고 그와 함께 무려 1만 4천 톤의 당밀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엄청난 양의 당밀은 순식간에 8미터가량의 당밀 파도를 만들면서 시속 56킬로미터로 주변을 덮쳤습니다. 사람, 고양이, 개, 말부터 주변 건물에 이르기까지 당밀에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무려 150여 명이 부상을 입고 21명이 사망하였고 건물들은 마치 1층에서 폭탄이 터진 듯 지붕만 남기고 주저앉았으며 근처의 찰스 강변은 갈색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지역을 메우고 있는 당밀을 치우기 위해 보스턴 시에서는 소금물을 들이부으며 청소를 시작했고 여기에 들인 인시(人時)는 무려 8만 7천 시간가량이었다고 합니다.

당밀 탱크는 왜 갑자기 무너졌을까요? 결론은 안전 불감증 때문이었습니다. 마감 날짜에 맞추어 서둘러 지어진 탱크는 싸구려 재료로 만들어진 데다 감독관은 설계도도 제대로 볼 줄 몰랐고, 설계사의 조언도 받지 않았으며 안전 수칙을 지키기는커녕 짓고 난 후 물 한 번 담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탱크가 완성되고 처음으로 당밀을 탱크 안에 부어 넣었을 때, 탱크의 이음새 사이로는 갈색의 당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담당자들은 탱크를 다시 만들기는커녕 탱크를 갈색 페인트로 칠해놓고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넘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탱크가 4년이나 버틴 것이 놀라울 지경이죠.

이처럼 지금 잠시 편해지자고 필요한 검사를 하지 않거나 돈 몇 푼 아끼고 빼돌리기 위해 부적합한 재료를 사용하는 등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안전 불감증은 몇 달, 몇 년 후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재지변의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늘 숙지하고 안전을 위함에 있어서는 대충 처리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미리 예방하고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생존법이니까요.

이주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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