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입시의 계절이다. 그렇지 않아도 해마다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학입시 수능시험이 올해는 불행한 지진 피해 때문에 일주일 연기되면서 어지간한 뉴스는 모두 집어삼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교육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보니 대학입시는 온 나라가 동원되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오죽하면 수능시험 듣기평가가 있는 시간대에는 비행기의 운항을 모두 금지하겠는가?

이른바 국정농단사태 때문에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고 정권이 무너진 폐허 위에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 이전 정부가 어지럽혀 놓은 교육 문제가 여러 부문에 흩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은 주로 새 정부가 대학입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데 쏠려있다.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도하는 언론 보도의 제목은 대학입시 넉 자로 시작하기 일쑤였고, 새 교육부장관이 취임한 후에는 교육부 관련 보도를 뒤덮은 것은 단연 수능시험 개편 문제였다. 수능시험을 지금처럼 상대평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절대평가로 바꿀 것인지, 논의가 격렬했지만, 수능시험 개편은 결국 일 년간 유예되고 말았다. 대학입시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뜨거운 쟁점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만 셈이다.

대학입시에 온 나라가 관심을 기울이고 수능시험에 대해 전 국민이 뜨겁게 토론하는 것은 좋지만, 정작 그 의논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많다. 오래전부터 대학입시 혹은 수능시험에 대한 토론은 결국 어떻게 하면 학생을 줄 세우고 등수를 매기기 좋은지, 그 방법을 의논하는 것이었다. 물수능이어서 엉터리라는 것은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기 힘드니 잘못이라는 말이고, 불수능이라는 것은 그 반대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린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지 못해 안달인 것 같다. 유독 물수능이라는 해에 수능시험 출제에 대한 비판이 심했던 것은 그런 연유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새 교육부장관이 추진했던 수능 절대평가가 심한 반대에 부딪쳤던 것도 줄 세우기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 때문이었던 듯하다. 하긴 줄 세우고 싶은 상대가 어디 학생뿐인가? 학교도 서열을 따지고, 선생도 등수를 매기고, 아무튼 줄 세우기에 환장한 나라 같다.

물론 교육에는 평가가 필요하다. 학생이 어느 정도 학업을 성취했는지 평가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등수도 매겨진다. 더 나아가서 교육자나 학교의 입장에서도 교육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는지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평가가 교육의 목적일 수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묻지 않겠다. 등수만 제대로 매겨 달라.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교육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국민이 모두 교육이란 가르치는 일이지 서열을 매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리고 개선 혹은 개혁해야 할 교육 문제는 대학입시 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런 본말전도가 대학에서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매우 불길하다. 시험이나 성적에 기울이는 관심과 열정의 반이라도 평소 예습과 복습에 바쳤으면 학생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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