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부대신문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검색해 내가 쓴 기사를 찾아 읽었다. 특히 부서면은 더 꼼꼼히 읽었다. 내가 쓴 기사는 탈원전, 쿱택시, 부산외대 등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기사를 읽으면 기사를 쓸 때 취재원을 만났던 일, 취재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이 모두 머릿속에 떠올랐다. 울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때도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라 기억되는 일들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 경험을 많이 했네’하고 읽은 소감을 끝낼 수는 없었다. 기사를 읽고 나면 ‘그래서 이걸 내 기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쳐서 나온 기사에 있는 바이라인에는 분명 ‘오시경 기자’와 내 메일주소가 적혀있다. 그 기사들은 내가 키보드를 두드려 써낸 것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해도 ‘이건 내 기사야’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누군가 그 기사를 보며 이건 누구 기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내 기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저게 정말 맞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내가 쓴 기사인데 내 기사라고 느껴지지 않는 걸까? 며칠을 고민해서 내린 나름의 답은 나만의 기획으로 쓴 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기획을 짤 때 어려움이 많았다. 관심 있는 분야나 소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항상 부서 기획 회의 전 급하게 소재를 찾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알고서 종종 소재를 추천해줬다. 그러면 그걸 받아서 기획안 양식에 맞춰 무작정 자료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소재를 이해하기에만 급급해 기획안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회의에서의 피드백을 통해 기획을 완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든 기획으로 취재하고 쓴 기사는 내 기사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느낄 부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시작도, 중간도 다른 사람이 정해줬다. 그랬기 때문에 내 기사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누군가의 기획 의도에 맞춰 만들어낸 글이기 때문이다. 

저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동기들은 자신만의 기획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같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걸 깨달았다고 해도 당장 다음 발행부터 나만의 기획을 만들어 낼 자신은 없다. 관심 있는 소재나 주제는 하루아침에 찾아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부수습이 아닌 정기자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쓸 미래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 후회하고 있는 부분을 다시 반복하는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모든 기획을 내 기사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내 기사를 쓰기 위한 발버둥을 쳐보며 정기자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년 이맘때는 이 글을 다시 보며 이제는 내 기사라고 할 수 있는 기사를 썼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시경 (영어영문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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