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창 수험생 시절의 무언가가 그리웠다. 두 번의 수험생활, 지금은 눈조차 뜰 수 없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자정 넘어서까지 하루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하던 나날이었다. 대학교와 군대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목표에 열중하던 그때의 무언가가 그리웠다. 나는 그것을 ‘바쁜 일상’이라고 결론 냈고, 이를 위해 신문사에 지원했다.

지금 나는 신문을 만드는 공대생이다. 많은 수업, 매주 반복되는 실험과 과제 그리고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취재와 늦은 밤까지 작성하는 기사. 내가 그리던 바쁜 하루는 일상이 됐다. 주변 사람들은 학과 공부와 신문사를 병행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바쁜 게 좋은 거야”라는 말로 슬쩍 넘어간다. 굳이 이 주제로 대화를 오래 이어가고 싶진 않다. 바쁜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바쁜 생활이 그리워 신문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슬슬 내 통제를 넘어서는 일상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공강 시간에 피시방으로, 노래방으로 향하는 친구들과 달리 취재가 있어 신문사로 달려가는 게, 밤늦게 실험을 마치고 소주 한잔하러 가자는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기사 쓰려 돌아서는 게 종종 씁쓸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쌓여갔다. ‘나는 그저 바쁘게 살고 싶었나, 그게 신문사를 지원한 전부인가’ 

여기 왜 남아있나. 바쁜 일상이 그리웠다면 충분히 경험했고, 이제는 오히려 지쳤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낙수를 쓴다. 계속해보자고.‘바쁜 일상’은 내가 그리던 무언가가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야 했다. 2년의 수험기간 동안 무엇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눈이 감길 만큼 피곤한데도 신문사를 계속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뭘까. 지나간 과거가 희석돼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을 뿐일까. 맡은 바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까. 이 무엇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의 내 신문사 생활에 큰 동력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또 한 해가 저물가는 때에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는 의미 없이 바쁜 일정에 치여 다음 1년을 살아내는 존재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살아있다는 느낌’. 이 문제를 고민하다 내가 내린 ‘무엇’에 대한 답이다. 2년의 수험생활이 그리웠던 이유는 하루하루 목표를 설정해서 달성하기도 하고 실패에 반성하기도 하며 느꼈던 ‘살아있다’는 감정 때문이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관심을 끄는 소재로 기획을 완성하면 기획안 회의에서 내 의견이 반영되거나 반박당한다. 그 순간 나는 살아있다. 취재를 계획하고 발이 닳게 돌아다닌다. 통화요금이 초과될 때까지 연락을 돌린다. 그 순간 나는 살아있다. 취재가 생각대로 안 풀려 우울해하고, 피곤에 절어 주저앉고 싶다. 그때마저 나는 살아있다. 한 주가 지나고 월요일에 발행된 신문을 마주한다. 그 열 장 남짓의 종이는 지난주 내가 이곳에서 절실히 살아왔음을 증명한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살아있다. 정확히 말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고 매 순간 그립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더 느끼고 싶다. 이곳에서. 

백지호 (전기컴퓨터공학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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