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촛불시위 1주년을 기념하고자 ‘적폐청산·사회대개혁·전쟁반대 부산 시민대회’가 개최됐다. ‘촛불은 계속된다’는 슬로건 아래 1,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이를 통해 여전히 촛불을 향한 시민의 관심이 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 11월 5일을 시작으로 지난 4월 29일까지 주말 24차례, 평일 100여 차례 진행됐던 부산 촛불 시국 대회. 처음 초에 불을 밝힌 날부터 1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역사와 부산에서 촛불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부산시민에게 촛불이 남기고 간 것들을 짚어본다.

작년 말, 국정농단 사태 당시 켜진 촛불은 전 국민을 거리로 나서게 한 도화선이 됐다. 광화문에서 밝혀진 촛불은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내 촛불은 뜨겁게 타올랐고 부산시민들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부산시에서도 하나의 불길로 모인 시민들의 축제 현장이 펼쳐졌다. 촛불집회 1년이 지난 지금, 일상으로 돌아간 부산시민들에게 당시의 촛불시위는 어떻게 남아있을까.

촛불로 뭉친 부산지역 시민단체

일반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해 타올랐던 부산의 촛불집회. 이 큰 시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부산 지역 여러 단체의 연대가 있었다. 당시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현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분부) 양미숙 공동집행위원장은 시민의 힘을 보여주고자 연대에 동참하게 됐다. 양미숙 공동집행위원장은 “개개별로 발생했던 부정한 사건들의 원인을 당시에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며 “하지만 국정농단 보도를 통해 퍼즐이 맞춰지면서 사안들의 연결고리가 선명해졌고, 전 정권에 대한 심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부산참여연대를 포함한 부산시 내 100여 개의 단체들이 연대했고 부산 지역에서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성사됐다. 4년 동안 사회 저변에 문제가 있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단기간에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다수가 모인 만큼 소통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집회는 순조로이 진행됐다. 

풀은 눕지 않는다

부산지역 촛불집회는 연령을 불문한 시민 발언자들의 꾸준한 참여로 평일에도 계속해서 성사될 수 있었다. 초등학생들도 매일같이 시위에 참여해 거침없이 자유발언을 이어나갔다. 유하영(43, 해운대구) 씨는 궂은 날씨에도 아이 손을 잡고 매주 토요일마다 서면으로 향했다. 아이에게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고, 떳떳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유하영 씨는 “참가자들 모두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나의 큰 목표로 뭉치다 보니 힘든 점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부산시의 경우, 서울특별시 광화문과 달리 광장이 없는 서면 길거리에서의 진행에도 질서 정연하게 시위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반대 세력의 시비조 언사나 교통 혼잡 등 충돌의 여지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대처해나갔다. 양미숙 공동집행위원장은 “충돌의 여지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잘 대처함으로써 성숙한 시민의 자세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시위대 맨 앞에서 시민들의 흥을 돋우며 시위를 고조시킨 밴드도 있었다. ‘스카로 사람들을 깨우고 일으키겠다’는 의미의 부산 지역 밴드 ‘스카웨이커스’는 부산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이끌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하야송’으로 시민들을 대동단결 시킨 것이다. 시위 당시 연주가 흘러나오는 트럭을 따라 시민들은 하나가 되어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스카웨이커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투쟁이 불붙은 시점에서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상황에 주목했다. 스카웨이커스 일동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사안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싶었다”며 “하야송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보다, 부산 시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던 ‘꽂힌’ 노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젊은 열기, 횃불로 타오르다

부산지역에는 유독 청년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하야 자랑대회’에서 청년 문화예술인이 등장해 공연을 이어나갔다. 이전에 열렸던 집회에서는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를 불렀다면, 당시 집회에서는 각종 개사곡이 두드러졌다. 청년들이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당시 시국대회 사회자로 활동한 부산 청년민중단 황선영 위원장은 4차례를 제외하고 모든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축제 분위기의 현장에 지치는 줄도 모르고 110여 차례가 넘는 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황선영 위원장은 ‘청년 민중의 꿈’ 단체 구성원으로서 시민들과 함께 ‘하야 자랑대회’ 행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청년 위주로 공연을 이어나갔지만, 나중에는 일반 시민들도 직접 노래를 개사해 부르며 시위는 축제 분위기로 탈바꿈됐다.

황선영 씨는 시위에 연대한 시민단체에게 집회의 사회자 역할을 제안 받았다. 시위 초반에는 그가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쳤으나, 참가자들이 ‘하야는 왕에게 하는 말인데, 박근혜가 왕이냐! 퇴진하라고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주최 측은 논의를 통해 이후 ‘구속하라!’라는 구호로 바꿔버렸다. 황선영 씨는 “구호가 만들어지고 바뀌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면서, 모든 과정을 시민이 주도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최다 인원 22만 명이 모인 서면 촛불 시위는 시민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박근혜 전 정권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 시민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황선영 씨는 “탄핵이 부결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거리로 나선 부산지역 시민단체

우리 학교 학생들도 촛불의 주역이었다. 꾸준히 촛불집회에 참가해온 강민아(무용학 15) 씨는 우리 학교 넉넉한 터에서 ‘7시간’ 무용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소품인 창틀을 세월호 배라고 가정하고 세월호 사건을 무용으로 풀어내며, 시민들에게 ‘7시간’이 가지는 상징을 상기시켰다. 그는 공연 소식을 들은 부산 시민에게 이를 통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촛불시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강민아 씨는 “학생들에게 국정농단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일깨워주고자 준비했다”며 “공연이 당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진 못할지라도 이를 보며 사람들이 사건을 떠올리게끔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집회에 참여한 김민재(신문방송학 16) 씨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한마음이 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랑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촛불, 부산 시민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다

촛불집회가 1년이 지난 지금, 거리 위에서 촛불을 쥐었던 이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다. 촛불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유하영 씨는 촛불이 안겨준 성취감을 꼽았다. 그는 “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한발 물러서 왔다”며 “하지만 성공을 경험한 후 사회문제에 전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강민아 씨는 “지난 시위로 부산 시민들이 언제든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준 것 같다”고 밝혔다. 보도를 통해 증명되는 전 정권의 만행에 충격을 받은 이상원(21, 북구) 씨도 꾸준히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쳤다. 이상원 씨는 “최순실 태블릿 PC 제보에서도 시민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며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부터 적폐를 청산해내는 과정까지 모두 국민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촛불시위가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부산 촛불집회의 주역이었던 참가자들도 소감을 전했다. 양미숙 공동집행위원장은 “주권자로서 의식이 희박해져 있는 상태에서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게 되는 기회였다”며 “이론이 아닌 현실의 경험을 통해 느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스카웨이커스는 역사의 한 가운데 있어서 ‘하야송’으로 하나의 방점을 찍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당시 집회를 단순히 촛불시위가 아닌 ‘촛불혁명’을 이뤄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촛불시위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해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스카웨이커스 일동은 “국민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낸 역사의 순간에 있었다는 경험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촛불이 밝혀야 할 응달

하지만 양미숙 공동집행위원장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적폐청산에 대해서 앞으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병우나 조윤선 등의 국정농단에 일조했던 인물이 여전히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정경유착의 온상인 엘시티 문제 등 부산시 내 적폐는 여전히 시민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유권자로서의 주권자가 아닌 일상 속에서의 주권자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촛불시위의 경험이 이러한 문제들에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황선영 씨는 1년 사이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이전에는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의 분위기는 청년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왔다. 하지만 이제 청년들은 실패의 원인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혈연, 지연 등으로 얼룩진 폐단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황선영 씨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 필요성을 언급했다. 황선영 씨는 “특정 사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집단이 정치에 큰 영향력을 주는 세력이 돼야 한다”며 “또한 이러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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