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55회 부대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김승룡(한문학) 교수 / 서은주(독어독문학) 교수
  • 승인 2017.11.18 21:06
  • 호수 1553
  • 댓글 0

격변의 진통을 앓고 있는 2017년에도 시는 찾아온다. 어김없이 시흥은 발하고, 교정은 그 시음을 토해낸다. 시는 산문을 직조해 내지 못하는 이들의 기민한 재주나 재치로 쏟아낼 수 있는 단문이 아니다. 모름지기 운문에도 물성이 있다. 자아가 있고, 타자가 있으며, 만물이 흐르고, 세상이 고인다. 일개 속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관조하는 것은 거뜬한 일이다. 이를 발설하는 것 또한 세인들에게는 단출한 일상이다. 시는 다르다. 시는 배회하는 듯하면서도 엄준하고, 조망하는 듯하면서도 참혹하다. 


응모작은 상당했다. 모든 작품이 시는 아니었다.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에 공감하고, 이를 시어로 다듬는 일련의 과정은 목공에 비견될 만하다. 시는 일회적인 감흥 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양식이다. 시인의 손에 박힌 옹이는 치열한 그 분투의 형적에 다름 아니다. 때마침 그런 시가 있었다. 수작이었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당선작은 <달력>이라는 작품이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쏟는 시간 내내, 기다리고 절망하고 체념하면서도 집요하다. 뽀얀 사랑을 닮은 우유는 이내 하얗게 응고되어 버리지만, 시적 화자는 어림없다는 듯이 말갛게 고인 그 우유를 사각사각 베어 문다. 


세상살이 그리 비정해서야 어디 되겠는가. 모든 사랑이 무정한 것은 아니다. 거뜬한 사랑도 있다. 가작으로 선정된 <당신의 계절> 또한 사랑의 물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가을을 먼저 품은 이가 계절을 다독인다. 덕분에 가을이 온다. 가만히 걸음한 계절 속으로 그의 연서가 당도한다. 시적 화자는 그 결을 사랑한다. 외피와 내피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무심한 그의 기별이 곧 그의 지극한 사랑이다. 시인이 제출한 모든 작품의 행간에 침윤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온유한 사랑에 다름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선정된 두 작품 모두 사랑을 읊고 있다. 두 시인들은 사랑을 앓는다. 사랑에 함몰되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사랑을 상실한 이후에도 투병은 계속된다. 시인의 통각은 한낱 범부의 뭉툭한 감각으로는 전연 포착될 수 없는 감도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먼저 아파하고, 그 무엇보다 오래 아파한다. 시인은 세상의 속죄양이다. 시가 위독해야 우리가 산다. 시인의 병세가 위중하다 하더라도 도리가 없다. 그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 계절은 깊고 혹독하다. 오늘도 깨진 유리 파편 마냥 시어를 간신히 움켜쥐고 있을 그가 무탈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인의 상처 덕분에 오늘도 가난한 이 하루를 공양할 수 있었다. 건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승룡(한문학) 교수 / 서은주(독어독문학) 교수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승룡(한문학) 교수 / 서은주(독어독문학)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