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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가 사는 워스트한 세상
  • 곽령은 기자
  • 승인 2017.11.05 07:35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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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라면, 피자, 치킨 등을 나눠 먹기. 시민활동가 폭행하기. ‘일간베스트’와 ‘어버이연합’이 벌인 소행들이다. 한동안 화제가 된 이 사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치하고 졸렬하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행동이냐”며 비난했다. 이렇듯 이들은 대개 사회의 ‘병폐’라고 일컬어지며 손가락질받는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을 앞세워 사회 문제를 고발한 영화가 있다. 바로 <우리 손자 베스트>다.

영화에서 ‘일간베스트’와 ‘어버이연합’은 각각 ‘너나나나베스트’, ‘어버이별동대’로 등장한다. ‘너나나나베스트’의 열혈 회원 교환(구교환 분)이 일과 중 가장 눈에 띄게 하는 일은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집회 시위현장에서 한 시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 “학살 중입니다. 적을 퇴치하셨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을 합성해 게재한다. 또 여동생이 속옷을 입고 있는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기이한 행각은 ‘어버이별동대’를 이끄는 정수(동방우 분)도 마찬가지다. 국립현충원이 보이는 육교 위에 흙을 쌓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무덤을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한다. 애국이란 명목으로 ‘빨갱이를 없애야 한다’며 난데없이 탑골공원에 모여 있는 노인들을 폭행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가 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이면을 비춘다. 교환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 백수다. 엄마를 살해하려 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여동생, 바람피우는 엄마. 이런 가족을 떠나 고시촌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마음 놓고 대화할 사람도 없다. 누군가와 꾸준히 얘기하는 때는 전화통화로 영어회화를 배울 때다. 이런 그에게 ‘너나나나베스트’는 유일한 소통창구다. 영화에서 정수의 가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인터폰으로 “누구세요?”라고 묻는 인터폰 속 며느리 목소리 외에 아들 부부는 볼 수가 없다. 정수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들 부부와 손자에게 인정받고 싶다. 손자를 ‘애국 안보 보훈 시상식’에 데려온 것도 그 이유다. 국가유공자가 되어 현충원에 묻히는 것이 그의 소원이다.

영화는 그동안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왜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가”. 이들의 행동 아래에는 사회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교환이 겪고 있는 단절된 인간관계,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해체된 가족은 그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3포세대에서 출발했던 청년은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7포 세대, 더 이상 포기할 것도 없다는 N포세대로 확장됐다. 교환은 암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삐뚤어진 형식으로 ‘너나나나베스트’에 뿜어낸다. 정수의 어려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노후자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렵고, 갈수록 노쇠해지는 신체로 인해 노인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에 휩싸이기 쉽다. 굳은 신념을 갖고 정수가 ‘어버이별동대’에서 ‘애국 활동’을 펼치는 것은 그가 삶의 원동력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은 10대까지만 지옥을 경험한 것이 아니냐. 그게 부럽다. 아직 꿈도 남아 있을 테고. 가장 예쁠 때 부모님 사랑받으면서 죽은 거니까”.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에 대해 교환이 한 말이다. 비윤리적인 말로, 비난받아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원색적인 혐오 표현으로 치부하기에는 찝찝하다. 패륜 속에 숨어있는 어두운 현실을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곽령은 기자  emily38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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