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신문>을 펼쳐 이런저런 기사를 읽는다.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다가, 신문 하단의 광고에 눈길이 멈춘다.
 
‘제55회 부대문학상 작품공모’
 
공모 부분과 대상, 일정, 응모요령, 그리고 시상내역까지 빠짐없이 읽는다. 그리고는 혼자서 슬쩍 웃는다. 문득, 10년도 더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도 이렇게 꼼꼼히 응모요건들을 읽었던 것 같다. 행여나 빠트린 부분이 있나 싶어, 두 번, 세 번 확인하면서 말이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써봤다. 그 전까지의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을 뿐, 소설이나 시, 혹은 희곡이나 수필 등 창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문학소녀나 학교대표로 나가 상을 휩쓸어 오는 백일장 키즈도 아니었다. 특별활동 부서로 문예부나 도서부 활동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무슨 생각으로 대학교 3학년이나 돼서 소설을 썼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문학적 영감을 받은 것도, 엄청난 창작 욕구가 생긴 것도,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글을 쓰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렴풋하게나마 유추해 본다면, 당시의 나는 대학교 3학년이라는 학년과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힘들어하고 있었던 듯하다. 환상을 가지고 시작한 연애는 시들시들 시시하게 끝이 나 버렸고, 대학 생활에 대한 흥미나 호기심도 사그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졸업 학점 채우기와 취업 준비뿐이었다. 막막했다.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나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잘 하고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목표를 향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 혼자 뒷걸음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때늦은 사춘기를 20대가 되어서야 겪었다고나 할까.
 
아마 그런 답답함과 초조함을 토로, 극복하고자 무언가를 썼던 것 같다.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홀로 모니터 앞에 앉아 쓰기 시작했다.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 모이니 소설 비스무리 한 것이 만들어졌다. 이게 뭔가, 글인가, 소설인가, 일기인가. 다 쓴 이야기를 프린트해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답변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몰래, 학교 문학상에 응모했다. 심사평에 한 줄만 언급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조차 없다면 깨끗이 접고 취업준비에 매진할 계획이었다. 나는 그해 부대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내 소설이 게재된 신문을 들고, 지금은 없어진 인문관 뒤 해방터에 앉아 홀로 훌쩍였다. 가을 햇볕이 무참할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신문 속의 내 소설과 소설 옆에 나란히 인쇄된 호빵같은 내 얼굴을 보고, 칼날처럼 벼린 언어로 쓰인 심사평을 읽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희미하게나마 내게 어떤 재능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그 후 등단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등단 이후 첫 책을 준비하는 오늘날까지 또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어떤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新人),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누군가는 흰 종이 앞에서 신인(新人)이 되기 위해 쓰고, 쓰고, 쓰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글을 조심스레 품속에 넣고 학교신문사에 응모했을 것이다. 11월 말이 되면 그 누군가의 글이 <부대신문>에 게재되겠지. 10년도 더 전의 나와 같은 누군가의 글을,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애썼을 어떤 이의 마음들을, 나는 신문이 발행되는 날, 가장 먼저 찾아서 읽어보려 한다.

오선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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