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했던 스웨덴 기자 아손은 코레아(Corea)에서는 태양이 서울에만 뜨고, 지방은 그늘에 가려져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같은 시기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 여행 작가 비숍도 같은 지적을 한다. 그는 서울이 바로 코레아라고 비유한다. 코리아에서는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사람들의 모든 시선과 관심은 서울로 향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런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한국만큼 사람들이 서울을 쳐다보고 동경하고, 서울에 의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은 어떨까? 필자의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고,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자원이 과거보다 더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은 앞에서 지적한 서울이 바로 코레아라는 말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서울공화국에서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모두 기타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기타’라는 말은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은 존재감이나 고유성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반 상황을 보면 서울을 위해서 다른 지역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방은 단지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인서울’이라는 말도 그렇다. 고등학생이든 학부모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성공방정식’의 일부이다.
 
이러한 서울 중심적 사고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어디에 살든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행복한 사회의 조건이다. 우리의 경우는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중앙의 언론도 이러한 편향된 인식을 갖게 하는 데 일조 한다. 2010년 어느 방송사의 앵커가 광고계에서 성공한 지방대 출신을 ‘루저’에서 광고 천재로 변모했다고 소개를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공유된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집중 현상이 나타나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서울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적 기준에서 볼 때 권력이 극도로 집중된 나라이다. 권력이 집중된 곳에 사람이 몰리고 자원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지방이 존재감을 갖고 고유성을 갖추도록 하려면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부연하면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에 나누어 주어서 권력의 다극 체제(Multi-Power Centers)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방은 극도로 중앙에 예속된 상태에 있다. 당연히 지방정부가 사업가 정신을 가지고 지역의 독창적인 발전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 부산은 매우 매혹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도시이다. 만약 선진국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받았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세계적인 도시가 됐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부산시와 같은 대도시에는 대체로 좋은 기업이 있고 좋은 대학이 있고 보고 즐길 거리가 있다. 분권화된 서구사회의 경우 대기업이 전국에 분산되어 있다. 당연히 사람들이 굳이 수도를 쳐다보고 동경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권력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치단체들은 사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철저히 손발을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규제를 푸는 작업이 절실하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실현할 것을 후보 시절에 약속했고, 당선 후 다시 공언했다. 또한 전국적으로 지방분권 개헌 운동이 민간주도로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내년 상반기에 있을 개헌안에 강력한 지방 분권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에 이어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라는 말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 얘기는 그만큼 지방분권을 헌법에서 강조한다는 의미이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강력한 지방분권 주의자였다. 그러나 수도권 주의자들과 중앙관료들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그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여건은 좀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지방분권에 저항하는 세력의 힘이 강하다. 대학의 젊은이들도 이제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보태야 할 때이다.

박세정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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