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유등이 온천천을 밝히고, 화려한 불꽃이 광안리 밤바다를 수놓은 주말이었다. 무료한 주말을 달랠 수 있는 희소식이었다. 한데 겨우 일주일 전에 중간고사를 끝낸 우리는, 이를 오롯이 즐길 수 없었다. 또 다른 ‘시험’이 눈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주말만 해도 토익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HSKK(중국어말하기능력평가)가 시행됐고,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 필기시험, SK그룹 등 일반 기업 인·적성검사도 진행됐다. ‘성적 관리’가 끝나자마자 ‘스펙 쌓기’와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만 했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우중충한 주말이었다.

시험의 목적은 바로 ‘평가’다.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우리 세대는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고, 사회는 이를 위해 다양한 시험을 내놓았다. 어릴 적부터 수많은 시험을 치러왔던 우리기에, 딱히 낯설지 않은 수단이었다. 한데 익숙함과는 달리 그 효용에는 대다수가 동의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모두가 거쳐야 했던 수능은, 사실 전공에 대한 적성이나 능력을 파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대학에서의 시험 역시 평가에 유용할지언정 효과적이지는 않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토익 점수가 높을지는 몰라도, 토익 점수가 높은 사람이 영어를 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1분에 한두 개의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기업의 인·적성검사도 직무 영역에 대한 이해나 인성보다 ‘문제풀이 요령’이 더욱 요구되는 시험이다. 우리세대에게 주어진 시험은, 철저한 서열 사회 속에서 줄을 세우기 위한 수단 정도에 그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우리에게, 시험 외의 수단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틀을 외우고 또 이를 수용하는 것을 ‘능력’으로 인정받는 현실에서, ‘정답’을 거스르는 창의적 생각이나 비판적 사고는 반발을 살 뿐이다. 결국 수능 성적을 잘 받아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성적을 관리해야 하며, 전공 외에도 다양한 ‘스펙’을 쌓으려 여러 시험을 치러야 하고, 각 기업이 내세운 ‘인재상’에 적합한 정답을 찍어내야 한다. 그렇게 수치화된 능력이야말로 앞 열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우리끼리 싸우고 부대끼며 서로 앞서나가려 몸부림쳐야 한다. 그저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말이다.

어제오늘 이틀 새 마주한 친구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세 명의 친구가 술자리에 함께 했는데, 수차례의 낙방 끝에 경찰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한 한 친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면접 ‘스터디’를 하느라 피로를 호소했다. 다른 직장인 친구는 위태로운 회사 분위기 때문에 이직을 생각하며 인·적성검사를 공부하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그 어렵다는 적성검사에 합격해 입사했으나 직무에 적응하지 못해 사표를 낸 뒤 재취업을 노리고 있었다. 신문사 출근길에는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7급 공무원 준비를 병행하고 있는 친구와 마주쳤는데, 졸업요건을 갖추기 위한 토익 시험을 하루 앞둔 상태였다. 또 필자의 사무실에 방문했던 한 후배는 그날 치렀던 HSKK를 망쳤다며, 재등록을 위해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정답을 찍지 못하면 실패하기에 알면서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보면서, 문득 OMR 카드에 그림을 그려 당당하게 답안이라 제출하던 어릴 적 친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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