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는 사람이 치료받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 수차례 머리를 구타당해 고막이 파열되고,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짓밟혀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맞은 곳에 부종이 생겨 피를 뽑아야 했다. 부산대병원 지도교수 B 씨가 수년간 전공의 11명을 상습 폭행한 것이다. 올해 국정감사로 부산대병원 ‘전공의 폭행’이 주목받았지만, 이곳의 일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신체 폭행뿐만도 아니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성추행, 한양대병원과 전북대병원에는 금품갈취마저 행해졌다. 이 모든 사건의 피해자는 ‘전공의’였고 가해자는 지도교수와 상급 전공의였다.

전공의는 쉽게 폭력의 대상이 됐다. 전문의로 거듭날 때까지 전공의에게 지도교수는 ‘슈퍼 갑’이다. 병원의 교육이 도제식이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수련병원에서 4~5년의 과정을 거쳐야 전문의가 될 자격을 얻는데, 이때 1:1로 지식과 임상수기가 전수돼 선임자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러니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이 벌어져도 전공의는 ‘저항’을 선택하기 어렵다. 다른 수련병원을 찾는 방법이 있다만,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좁은 의사 사회 속에서 ‘찍힌’ 전공의는 정상적인 수련 생활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몇 년 견디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이런 상황 속에서 폭력을 참고 견디다 보니 둔감해진 탓일까. 폭력은 ‘훈육’과 ‘질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치장됐다. 그리고 관습으로 대물림됐다. 여느 집단폭력이 그렇듯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 구조가 병원 사회에 자리 잡은 것이다.

“병원장님의 태도부터 구조를 해결할 수 없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유은혜 의원은 분노했다. 해묵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면, 병원은 이를 집단 안에서 불식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로 드러난 폭행 지도교수는 8년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고발됐다. 그 외에도 성추행과 폭언으로 고발당한 교수가 여럿이다. 이들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중징계랍시고 전공의를 폭행한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을 처분하고, B 씨의 일에는 전공의를 배정시키지 않는 선으로 사건을 무마시켰다. 덕분에 폭력은 이전처럼 제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동안 B 씨는 진급까지 했다니, 전공의들에게 ‘저항’은 사치나 다름없어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성추행 피해자는 결국 병원을 떠났다. “인내심 부족하고 힘든 일을 꺼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하고 도피적인 결정이 아니다. 강력한 재발 방지 및 개선 대책으로 수련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 전문의의 꿈을 접으면서 그가 남긴 호소문이다.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병원조직문화는 훈육, 위계질서와 폭력을 구분 짓지 못했다. 이를 문제라고 말하지도 못하게 했다. 온 국민에게 알려진 지금이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전환점이다. 국정감사에서 부산대병원장은 많은 의원의 질타에 “제대로 된 조사 후 처벌토록 하겠으며, 근본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요식행위가 아니었길 바란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