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6일부터 26일까지 우리 대학은 ‘부산대, 꽃 피우다. 민주花!’라는 주제로 제38주년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였다. 10.16을 기억하고 알리는 전시회, 영화제, 걷기대회, 족구대회, 토크 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준비되었다. 특히 26일 걷기대회 참가자들은 넉넉한터에서 출발하여 부마민중항쟁탑을 거쳐 1979년 10월 16일 최초의 시위가 일어난 제1사범관(당시 인문사회관)과 자연과학관(당시 상학관), 건설관(옛 도서관) 앞의 부마민주항쟁 발원지 표지석, 2년 전 헌신한 고현철 교수가 머물었던 인문관 등을 따라 걸었다. 학생과 교수 및 당시 운동의 주역들이 함께 한 이날의 걷기대회는 격렬한 현대사의 주요 시점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우리 부산대학교의 민주화 전통과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행사였다.

주지하다시피, 10.16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를 종식시킨 위대한 민주주의 운동으로서 그 정신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 가장 가까이는 지난겨울을 뜨겁게 달군 촛불혁명의 정신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부마민주항쟁 정신을 개정 헌법 전문에 명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기도 하다. 불의에 항거하고 억압에 맞서며 이타적 대의에 헌신한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 개정 헌법에 명시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봉사한 역할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부마민주항쟁을 일으킨 정신이 바로 우리 대학의 ‘진리, 자유, 봉사’라는 개교 이념과 일치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산대의 역사라도 그것이 부산대 자체에서 소외되어 있다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벌도서관 정원 한 켠에 놓인 10.16부마민중항쟁탑은 학생들의 시선이 드문 곳에 있고 부마민주항쟁 발원지 표지석은 건설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1979년 처음 시위의 물꼬가 터진 당시 상학관(현 자연과학관)에서는 항쟁의 흔적을 전혀 알 수 없다. 맥락이 지워진 채 강의와 생활의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이들 현장은 역사성을 상실하였고 학생들은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시월제 중간에 열리는 연례행사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10.16 기념행사가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 한 이런 일은 매년 반복될 소지 또한 크다. 

진리, 자유, 봉사의 정신을 실천한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우리 대학의 중추적인 가을행사로 만드는 일은 효원인의 자긍심을 북돋고 부산대의 위상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념물, 기념비, 역사적 장소에는 친절한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또한 이번 건기대회의 루트처럼, 시위가 최초로 발생한 제1사범관과 자연과학관, 건설관을 도보로 잇는 표식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건설관 앞에 맥락 없이 설치된 부마민주항쟁 발원지 표지석은 그 의미를 설명하는 관련 사진과 동영상을 건설관 1층 내부의 벽면에 설치하자. 그러면 기존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역사자료실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의 역사를 캠퍼스에 복원하는 일은 우리가 스스로 파묻었던 진주를 다시 캐내는 일과 같다. 자랑스러운 일은 자랑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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