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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뿐인 것들
  • 장덕현(문헌정보학) 교수
  • 승인 2017.10.29 01:2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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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혔다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비난은 각오해야겠다. 과한 오지랖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 대학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 데나 주차된 차들이다. 캠퍼스 곳곳이 자동차로 넘쳐 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횡단보도나 주차금지 팻말 앞에도 여지없이 차주의 주차 신공이 발휘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교내 곳곳에는 흉물스런 빨간색 차단봉들이 빼곡히 박혀있다. 이곳이 과연 대학 캠퍼스인지 시청 뒷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에도 새벽벌도서관 앞은 주차된 오토바이들로 붐볐다. 물론 버젓이 ‘이륜차 주차금지’ 푯말이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이 주변이 북문에서 진입하는 차들과 학생들이 뒤섞이는 곡각지점이기 때문이다. 건물 반대편의 이륜차 주차장은 시험 기간 내내 텅 비어 있었다. 이 오토바이들의 전형적인 여정은 기숙사에서 경영대와 사회대로 이어지는 일방통행길을 역주행한 후 도서관 앞에 닻을 내리는 것이다. 이륜차 등록제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라 벌점도 줄 수 없다. 모름지기 오토바이라고 하면 미등록에 역주행, 그리고 불법주차의 3종 세트 정도는 갖춰줘야 하는 모양이다. 

건물에 다가가 보자. 대부분 건물의 입구 주변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에 연연하지 않는다. 금연 표지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운다. 바닥의 꽁초를 치우다 못해 금연 표지 밑에 재떨이를 놔둔 친절한 건물까지 있다.

물론 항변할 수 있다. 흡연실은 부족하고, 주차공간은 모자라며, 교내의 일방통행로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일면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규칙과 약속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 미국에서도, 하와이주를 필두로 휴대폰을 보며 걷는 것만으로 경찰이 1회 35달러, 재범은 99달러까지의 벌금을 매긴다고 한다. 일명 ‘스몸비(스마트폰+좀비)’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규칙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존중받고 지켜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심도 든다. 명색이 대학에서 이렇게까지 규칙이 무시당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측의 안일함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가령 흡연만 해도 그렇다. 일본만 가도 길거리 곳곳에서 뚜껑 없는 흡연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천장만 없을 뿐 흡연실과 똑같아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생각해 볼 일이다. 교내 어느 곳에 과연 제대로 된 흡연실이 있는가. 또 일방통행이 그렇게도 무시당한다면 현재의 교내 통행로들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살펴, 주차선을 재정비하고 자동차와 이륜차의 동선을 고려한 통행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륜차 주차가 문제라면 이륜차들의 동선을 파악하여 적절한 위치에 주차장을 만들면 될 일이다. 그렇게 정책에 성실함을 담아야 규칙과 약속에 힘이 실린다. 말뿐인 원칙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말뿐인 것들이 낳은 엄청난 파국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세월호에서부터 최근의 반려견 사건에 이르기까지 문제의 발단은 항상 개 목줄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간과한 ‘융통성’이었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그저 무시해도 좋은 것이든, 아니면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든, 그런 ‘말뿐인 말들’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덕현(문헌정보학) 교수

장덕현(문헌정보학)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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