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은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한 ‘라이고/비르고(LIGO/VIRGO) 협력단’을 이끈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그리고 킵 손 교수들이다. 지구로부터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29배와 36배인 블랙홀 두 개로 이뤄진 쌍성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태양의 3배 가까운 질량의 에너지가 방출됐고 블랙홀 주변에 찌그러진 시공간이 만들어낸 중력파가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이 중력파는 세계협정시(UTC) 2015년 9월 14일 오전 9시 51분 지구를 통과하면서 라이고의 측정 장치에 그 흔적을 남겼고, 라이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했다.

라이고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5개국, 90개 이상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참여하였고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투입된 프로젝트다. 중력파 관측에 막대한 인력과 지원이 필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력파 측정을 위해서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서 수소 원자 하나 크기 정도의 작은 흔들림을 감지할 수 있는 정밀한 측정장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숫자로는 1019분의 1로 간단히 표시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그 의미를 헤아리긴 힘들다.

1019은 너무 큰 숫자이니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 1억, 즉 108에 대해 생각해보자. 쉬운 예로 현금을 세어 보자. 요즘 부동산 가격은 기본이 억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1억 원 단위의 거래를 할 때 1만 원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모든 대금을 1원짜리 동전으로 지급한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동전 개수가 정확하지 않으니 대략 1억 개의 동전을 쌓아 놓고 그중에서 1억 개를 정확히 세어 가져가라고 한다면 더욱 난감한 상황이 된다. 1억 원과 1억 1원을 차이를 가려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중력파 측정을 위해서 1019에서 1개를 구분해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운 과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동전의 개수를 정확히 세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물체의 크기나 양을 측정할 때 1억 분의 1 차이를 구분해내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도로변에 세워진 대기환경전광판에 적혀 있는 ‘아황산가스(SO2) 0.01ppm’은 공기 중에 아황산가스 분자의 농도가 1억 분의 1이라는 뜻이다. 작은 강의실에서 누군가 방귀를 뀌었을 때 방귀 냄새 분자의 농도가 대략 이 정도이다. 웬만큼 민감한 코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눈치채기 쉽지 않은 양이다. 아무리 정확히 재려고 해도 실제 물체의 측정에서는 과학기술 전문가도 그 한계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한편 1983년 국제도량형국이 진공에서 빛의 속력을 기준으로 미터의 표준을 정함으로써 길이 측정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 “빛의 속력은 항상 일정하다”는 자연법칙에 근거해서, 당초 경험적으로 정했던 표준인 미터 원기를 버리고 빛이 움직인 거리를 길이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빛의 속력의 측정결과에는 오차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 초정밀 측정이 요구되는 중력파 측정에 빛의 절대적인 속력과 파동성을 이용한 방법이 채택됐다. 빛의 파장을 자의 눈금으로 써서 파동의 위상차에서 길이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만일 절대적인 빛의 속력이 아닌 경험적으로 정한 미터 원기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길이 측정 기준 자체가 갖고 있는 오차 한계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력파만이 아니라 지구 중력도 우리 주변의 시공간에 영향을 준다. 우리의 ‘둔감한’ 눈, 코, 귀로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공간이 휘어지고 시간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구 주변을 공전하는 인공위성의 시계는 아주 미세한 크기이지만 변형된 시공간의 영향으로 지상에 비해 빠르게 간다.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인공위성의 GPS 신호가 필수라는 걸 보면 중력파와 찌그러진 시공간이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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