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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으로 채용시장에 변화의 바람 불까
  • 손지영 사회부장
  • 승인 2017.10.01 09:27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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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없는 이력서’를 통한 블라인드 채용 법제화.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에 관해 자세히 언급했다. 이후 7월에는 고용노동부가 관계부처와 합동해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공개했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우리나라 채용시스템 개선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덮어놓고 사람만 보겠다

블라인드 채용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학력, 신체조건 등 편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를 배제하는 방식이다. 적용 단계로는 블라인드 지원서와 블라인드 면접으로 구분된다. 이를 통해 모든 구직자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배경이 아니라 실력을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는 고용생태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 어느 대학교 출신이든지 똑같은 조건과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히 경쟁할 수 있게 이번 하반기부터 당장 시행했으면 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은 332개의 공공기관과 149개의 지방 공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세부 내용으로는 △지원서에 전체학점이 아닌 전공학점만 반영 △나이와 성별 기재란 삭제 △압박면접이 아닌 직무 관련 면접 진행 등이 있다. 이는 이후 하반기 공무원 공개채용시험과 경력채용시험에까지 확산 도입된다. 민간기업도 피해갈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400개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예정이다. <채용절차와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도 추진 중인데, 개정안에는 민간기업이 기초 심사자료에 차별적 요인으로 작용할만한 정보를 기재토록 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있다.

블라인드 채용 확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블라인드 채용이 처음 시행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2005년 중앙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에서 처음 도입된 바 있다. 당시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 기재를 금지하고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하는 형태였다. 이후 2007년 고용노동부는 블라인드 지원서 양식인 ‘표준이력서’를 공공기관에 배포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2015년부터는 국가직무능력표준(이하 NCS) 제도화로 구직자의 직무 중심 평가를 추진 중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블라인드 채용은 기존의 것들이 정책적으로 견고화되고 확대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일차적 목표는 채용과정 속 차별 해소다. 그동안 학벌주의나 과열된 사교육 및 입시전쟁의 시발점에 ‘채용에서의 차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 차별은 한 개인이 태생적 특성이나 사회적 지위로 인해 타인과 동등할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취업과정에서의 차별은 사회구조적 차별현상을 심화시킬 여지가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의 73.2%가 채용 과정에서 학력 등 차별적 조건이 반영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은 실제 취업과정에서 스펙(Specification, 평가요소)이나 사진 등으로 인해 탈락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학력이나 출신지역에 차별을 두지 않는 공무원 채용시험의 경쟁률이 나날이 높아지는 것도 그 방증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런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지방 대학교 출신 구직자들은 기대해볼 만 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역 청년에 대한 차별 감소 효과도 있다. 한국방송공사(KBS)가 2003년부터 5년간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결과, 명문대 출신 합격자가 70&에서 30%로 감소한 반면 지방 대학교 출신은 10%에서 31%까지 늘어났다.

또한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서구권처럼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미국, 유럽 등과 우리나라의 채용방식 차이는 인적자원관리 방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사람 중심 인적자원관리(HRM)’로 구직자의 능력, 학벌이나 연령 등에 초점을 맞춘 반면, 서구권은 ‘직무 중심 HRM’으로 구직자의 직무수행 능력과 같은 직무적합도를 우선시한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스펙 위주 채용은 구직자로 하여금 스펙을 쌓기 위해 과도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했다. 때문에 이번 블라인드 채용 정책을 통해 기존의 직무와 무관한 스펙 위주의 채용체계를 벗어날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동의하기 힘든 이유

블라인드 채용 논의가 본격화됐을 때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이 명문대학교 학생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다. 학력과 스펙 또한 노력의 결과물임에도 이를 배제한다면 입시성적이 높은 대학 출신 구직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블라인드 채용에 관해 언급한 뒤 일부 서울 소재 대학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역차별 논란은 구직자 간 ‘학력’을 차별의 요소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로 벌어진다. 김왕준(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수한 대학 환경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양질의 경험을 얻은 지원자에겐 분명 장점이 있다’며 학력 기재의 필요성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형태의 경쟁양상이 생겨나고 사교육이 심화될 것이라는 비관도 있었다. 블라인드 지원서에 많은 정보가 배제된 만큼 남아있는 문항의 가중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자기소개서 △논술 △구두 면접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 학원이 성행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 가능하다. 실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이 발표된 뒤 다수의 취업준비생은 취업 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취업 사교육 시장의 활성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불완전한 제도라는 비판도 있다. 기존의 학력이나 스펙을 대체할 만큼 블라인드 지원서나 블라인드 면접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기업 인사담당자 4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런 우려를 잘 보여준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반대한 79명(19.1%)이 꼽은 주된 이유로 △인재 채용을 위한 기준이나 판단 근거 모호 △외모, 임기응변 등 단편적 면들로 지원자를 판단할 우려 등이 있었다. 제대로 블라인드 채용을 하려면 자원자의 능력을 판단할만한 새로운 전형 방식이 개발돼야 함에도, 이러한 준비도 없이 무작정 시행하다가는 부작용만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블라인드 채용이 되지 않으려면

현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안으로 NCS 활용을 내놨다. 이는 직무 수행에 요구되는 직무능력, 예컨대 지식이나 기술 등을 체계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것이다. NCS 기반 채용은 기업이 직무별로 원하는 요건에 지원자가 능력을 증명함으로서, 목표 지향적인 직무 능력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다. 박근혜 전 정부가 NCS 개발에 힘썼다면 문재인 정부는 확대 적용할 전망이다. 때문에 블라인드 채용 확대 과정에 NCS를 필기시험으로 대체하고, 기출문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구직자가 시험에 대비하게끔 한다. 앞서 말한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국내에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도 NCS가 꼽힌다. 다만 NCS 기반 채용이 활용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으로의 확산이 관건이며, 향후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학력과 직무 능력 간 상관관계가 미약하다는 연구결과가 도출된 지도 19년이 지났다. 프랭크 슈미트(아이오와대 심리학) 교수와 존 헌터(미시간주립대 심리학) 교수가 85년간의 심리학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학업-직무성과 간 상관성은 직무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직무성과 간 상관성과 비슷한 수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봤을 때 몇 십 년간 학력을 주요 판단근거로 여기던 우리나라의 채용 방식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의 블라인드 채용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이는 향후 직무 능력이 판단 기준이 되는,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도래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스펙 없는 이력서, 차별 없는 채용이 이뤄지는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손지영 사회부장  sonmom@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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