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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남편을 두었던 공작부인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7.09.29 21:49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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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나라의 1년 미만 신혼부부 이혼율이 세계 1위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깨가 쏟아져도 모자랄 초기의 신혼부부가 갈라서는 가장 큰 원인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결혼하고, 결혼 후에야 이 사람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내 몸을 구겨 넣어서라도 맞춰야 할 틀이 참 많습니다. 성적도 좋아야 하고, 좋은 대학도 가야 하고, 그 이후엔 취업이나 결혼 이야기를 듣곤 하죠.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칭찬은 잠깐, 그 다음, 그 다음을 향한 압박이 쏟아지니, 젊은 층이 이런 참견과 간섭으로 인한 부담감 때문에 명절을 기피한다는 기사가 매년 등장합니다. 특히 소위 말하는 ‘결혼적령기’가 되면 부모님의 재촉에 못 이겨 쫓기듯이 결혼해버리는 경우들도 많죠. 1년 미만 신혼부부의 이혼율이 높다는 기사를 보면 이처럼 사회의 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는 젊은이들의 고난도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세기 영국, 한 공작부인의 사생활 때문에 영국의 사교계는 물론이요 나라 전체가 들썩인 일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처들리는 왕세자비의 말동무로 일하고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무척 아름다웠다는 엘리자베스를 두고 여러 남성이 다가왔고 그녀는 그중 아우구스투스 할베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4계절은 지켜보라는 말도 있지만 아우구스투스와 엘리자베스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하겠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록 훗날 제 3대 브리스톨 백작이 되긴 하지만 당시 아우구스투스는 가난한 군인이었고 엘리자베스는 결혼하면 일을 그만둬야 했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가 제대할 때까지 2년만 더 기다리고 그때도 좋으면 결혼하라고 말렸지만 그런 말이 사랑에 빠진 연인의 귀에 들어올 리가 있겠습니까. 

엘리자베스는 주변의 만류에 망설이기 시작했지만 상대는 결혼을 재촉했고 결국 이들은 어두운 밤, 촛불의 빛조차 가린 채 진행된 결혼식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신랑은 금세 군대로 떠나버렸고 신부는 결혼을 숨기고 직장에 복귀합니다. 사랑에 눈멀어 한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전쟁터 같았습니다. 둘은 끊임없이 싸워대는 와중에도 몰래 자녀까지 뒀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아진 것도 아니었죠.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이제는 결혼을 어릴 적 장난으로 치부한 엘리자베스는 에블린 피에르포트 공작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역시 연인이 있었지만 그는 아내의 바람에만 화를 내며 이혼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엘리자베스의 ‘결혼한 적이 없으니 이혼할 수 없다’는 말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후 에블린과 엘리자베스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지만 문제는 결혼 4년 만에 공작이 사망하면서 벌어집니다.

공작은 전 재산을 엘리자베스에게 남겼는데, 이를 보고 친척들이 엘리자베스는 공작의 적법한 아내가 아니라며 소송을 건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자베스가 중혼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아주 유명해져 신문에 실리는 건 물론이요, 만삭의 왕비까지도 재판장에 구경하러 올 정도였습니다. 결과는 엘리자베스의 패배였지만 결론적으로 공작부인이라는 칭호 외에는 잃은 것이 없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있던 중혼죄 스캔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에블린은 유산을 ‘엘리자베스’에게 남겼지 ‘아내’에게 남기지 않았거든요. 공작의 친척들이 다시 한 번 재판을 시작하려 들자 엘리자베스는 서둘러 영국을 떠났고 평생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재판 덕에 얼떨결에 결혼을 인정받은 아우구스투스와 엘리자베스는 죽는 날까지 공식적으로 브리스톨 백작부부였지만 다시는 부부로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들이 2년만 더 기다렸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오래 알고 지낸다고 모든 걸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공작부인의 이야기는 결혼을 할지 말지, 누구와 언제 왜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함에 있어서 ‘사회의 틀에 맞춰야 한다’거나 ‘지금 당장 좋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섣불리 선택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전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주은 작가

 

이주은 작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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