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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시리즈②] 사드 배치 2년이 남긴 것성주의 미래, 우카와
  • 박지영 대학·문화부장
  • 승인 2017.09.10 11:21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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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시리즈 > ① 사드 기지가 된 마을 ② 성주의 미래, 우카와
작년부터 연신 사드가 뜨거운 이슈다. 외교부터 안보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잊혀진 사람들이 있다. 사드가 배치되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 주민이 그렇고, 2년 전 일본 교토부 교탄고시 우카와 지구 주민이 그랬다. 충분한 논의 없이 강제적으로 사드를 떠안게 된 두 마을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7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에 사드 4기가 추가 배치됐다. 정부는 부지 선정부터 배치까지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어떤 과정에서도 주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2년 전 바다 건너 일본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교토부 교탄고시 우카와 지구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사드 기지가 건설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을 모임을 만들어 반대 시위도 펼쳤지만, 기지는 우카와 지구에 건설됐다. 사드 엑스 밴드 레이더 배치 2년 후, 현재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달 15일 <부대신문>은 우카와 지구를 찾아 그곳의 모습을 담았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 주민들만 고통 받았다

“맴맴…위이잉…위이이잉…” 우카와 지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들리는 소음이 있었다. 귀를 찌를 듯한 한 여름 매미 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소음에 땅이 울리는 듯 했고, 두통이 몰려왔다. 소음은 사드 엑스 밴드 레이더 기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졌다. 기지 내 발전기가 소음의 진원지였던 것이다. 우카와 지구에서 만난 ‘미군기지 건설을 걱정하는 우카와 유지 모임’(이하 우카와 모임) 나가이 도모아키(교탄고시, 60) 사무국장이 설명하길 “발전기가 기지 상용 전력을 생성하면서 나는 소음”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나마 머플러(발전기 소음 저감시설)를 설치해놔서 ‘이전보다는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소음은 2년째 그대로였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까지 거리는 200m밖에 되지 않아요. 그들은 매일 소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사라지지 않는 소음에 일본 정부가 간사이 전력의 상용전력을 끌어오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안에는 그러리라 했지만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전기를 끌어오는 공사를 하겠다고 나선 기업이 없어서다. “공사 계약 낙찰 금액이 너무 낮아서 아무 기업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앞으로 2년은 더 기다려야할 거라고 들었어요”.

우카와 지구의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바로 위치한 엑스 밴드 레이저 기지. 특별히 두꺼운 철문이 있다거나 군인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입구 근처에 마을과 기지를 분리하는 빨간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미군기지 경비원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입구 벽면에 빨간 글씨로 써둔 ‘WARNING’이란 표지판도 세워져있었는데, 허가 없이 들어오면 처벌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처음부터 허락도 없이 들어온 자는 누구였을까. 표지판을 바라보는 나가이 사무국장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실제 엑스 밴드레이더가 들어선 뒤부터 우카와 지구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미군이 마을에 온 뒤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이 30여 건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교통사고가 가장 많았는데, 일본 교통법규에 무지한 미군의 차에 다친 주민도 여럿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일미지위협정으로 주일미군은 일본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었다. 본래 미군들은 한 주거지에 모여살기로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일반인들과 섞여 살고 있는 미군이나 그런 미군의 거주지조차 파악 못하고 있는 교탄고시나, 주민들은 못미덥기만 하다. “미군이 언제 어떻게 사건을 일으킬지 모르는 건데, 그런 그들이 흩어져 살고 있으니 불안만 커져가요”. 결국 일본 정부와의 약속 중 이행된 것은 없었다. 교탄고시와 교토부가 조약을 작성하고 일본 정부 방위대신이 보증하면서까지 주민 안전을 지켜주겠다 했지만 그저 말 뿐이었다.

기지 왼쪽에는 사원이, 오른쪽에는 잡초 무성한 부지가 위치해있다. 오른편 부지는 정부가 땅을 매입할 때 한 할머니가 팔지 않고 끝까지 버텨 지켜낸 곳이다. 그의 조상 때부터 미군에게  받은 피해가 많아서 미군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렇게 지켜낸 부지를 그는 우카와 모임에게 넘겨줬다. 덕분에 이 땅은 우카와 모임의 기지 감시 소초로 활용되고 있다. 우카와 모임은 기지 안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기지 입구의 것과 똑같은 ‘WARNING’ 표지판을 세웠다. 다만 들어간 내용은 달랐다. ‘미군기지는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는 미군기지를 원한 적 없다’는 내용이었다.

기지 왼편에 나있는 길로 조금만 들어가니 구혼지 사원이 나왔다. 우거진 풀숲과 목재 사원 바로 옆에 철조망이 늘어서 있었다. 경고 표지판도 빠지지 않았다. 철조망 바로 뒤편은 베이지색 방음 시트가 붙여져 있어 기지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얼핏 시트 사이로 바다가 비쳤다. “사원 뒤 해식 절별에는 문수보살이 있어요. 과거에는 주민들이 자주 순례하러 왔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미군기지 때문에 그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요”. 이어 나가이 사무국장은 사원 주변에 나무가 잘려나가 휑한 땅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 일대는 국가자질공원이라서 나무 하나도 그냥 벨 수 없었어요. 그럼 뭐해요. 미군기지가 건설될 때는 전부 무시됐는데…”.

나가이 사무국장은 손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햇수로 3년 4개월 째, 매일 그는 기지 일대의 모습을 SNS에 기록했다. 외부 사람들이 우카와 지구의 모습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레이더가 배치된 지 2년이 지났어요.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 더 나아질까 싶어요. 오염이나 전자파의 영향은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요”.

우카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문득 그는 우리나라 성주시의 안부를 물었다. 당시 소성리에는 사드 발사대 2기만 배치돼있던 상태였다. 북핵 도발로 인해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검색어를 장식하던 때였다. “작년 11월에 한국에 가서 함께 시위했었어요. 그들의 시위 규모나 열정이 우리랑 전혀 달랐어요. 우리는 졌지만 성주는 이기길 바래요”. 일본에서 돌아온지 한 달 남짓, 지난 7일 사드 발사대 4기가 소성리에 들어섰다. “성주의 미래가 우카와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라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박지영 대학·문화부장  ecochees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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