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소비수준은 뻔하다. 소득이 높지도, 안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써야 할 곳은 넘쳐난다. 생활비, 등록금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스펙’을 쌓는 데에도 돈이 든다. 여행을 가거나 브랜드 옷을 사는 등 ‘대담한 소비’를 하려면, 덜 먹거나 더 일하는 등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소비를 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가, 취업을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취직에 성공하더라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보편적인 삶’을 위한 과제들이 눈앞에 닥쳐오는 탓이다. 차를 사야 하고, 집도 마련해야 하며,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물론 노후까지 대비해야 한다. 전반적인 소비수준이 몇 계단쯤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같은 층에 머물 뿐이다.

그런데 그런 각박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모든 과제를 완수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차를 사려니 천정부지인 집값 앞에서 멈칫하게 되고, 결혼에 투자할 목돈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벌이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은커녕 고용안정성조차 불투명하다. 게다가 고령화 사회에서 살아갈 만큼의 노후대비는, 얼마나 해야 할지 감도 잡기 어렵다. 결국 20대는 현재의 ‘희생’과 미래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지쳐버렸고, 다른 형태의 삶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로 욜로(YOLO)다.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인데,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으로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자는 태도다. 바꿔 말하면 ‘보편적인 삶’을 포기한 채, ‘지금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하며 욜로족(族)의 삶을 누리려 하고 있고, 미디어는 이걸 하나의 혁명인 양 연이어 다루고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적어도 서른을 코앞에 둔 필자와 친구들에게는 그랬다. 여행을 좋아하던 한 친구는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헌데 결혼 문제로 다투다 5년의 연애를 끝내더니, ‘결국 돈이 문제’라며 적금 통장을 하나 늘렸다. 물론 여행 계획은 전무하다. 취업하자마자 차를 사 실컷 놀러 다니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다른 친구는, 차 살 돈을 모으느라 왕복 두 시간의 거리를 버스로 통근하고 있다. 무리 모두가 욜로족 그 자체라고 인정했던 또 다른 친구는, 속도위반한 탓에 벌이와 육아에만 모든 시간을 쏟고 있다. 결국 일말의 보장도 없는 미래에 발을 내디딜 수 있을 만큼 대담한 이는 아무도 없었고, 욜로족이 되기를 바랐던 우리는 가끔의 일탈에나 만족해야 했다.

‘포기하고 싶다’는 절망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한 프로그램이 이를 방증한다. 이 프로그램의 패널은 ‘돈을 모으려면 절실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신청자의 영수증을 분석한다. 이에 많은 20대가 큰 호응을 보냈고, 자신의 영수증도 검토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편성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소비를 두려워하는 20대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이쯤 되면 그렇게나 성행한다는 욜로는 차라리 허상에 가까울 테고, 보편적인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절실함만이 실제를 떠돌고 있다. 와중에도 행복을 마주하고 싶다는 우리 욜로족의 영수증은,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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