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우리 대학의 6개 연구소에 대학본부로부터 한 통의 공문이 도착했다. 공간사용료 체납을 근거로 연구소 공간을 폐쇄하겠다는 내용이다. 금세기 들어 다양한 측면에서 대학의 시장화가 지적되고 있지만 그 공문을 통해 부산대학교 본부는 대학이 시장 그 자체이며, 대학 본부는 임대사업주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공문의 근거는 교과부의 요구에 따라 2014년 하반기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간비용채산제이다. 공간비용채산제란 “공간의 합리적인 배분과 효율적인 활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사용주체로부터 초과사용면적에 대하여 사용료를 징수하는 제도를 말”(<부산대학교 공간관리에 관한 규정’(이하 규정)> 3조 7항)하며, 시행 목적은 “부산대학교 공간사용의 형평성과 효율성을 제고”(1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공간비용채산제는 일부 구성원들의 공간과잉사용을 제한하고 교육과 연구에 필요한 공간을 형평성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제도인가? 적어도 연구시설에 관한 한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부산대학교 공간비용채산제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근로계약을 체결해 상근으로 근무하며 4대 보험을 포함해 인건비 전액을 연구시설이 부담하는 직원 또는 연구원이 있는 연구소에 두 칸의 기본공간을 부여한다. 공간비용채산제는 풀타임 직원/연구원을 고용할 수 있는 정도의 연구비를 수주하지 못하는 연구소는 공간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공간폐쇄예고를 통고받은 연구소 중에는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를 발간하는 연구소도 있다. 그런 연구소에도 기본공간이 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간비용채산제가 오로지 경제활동만을 연구소의 존재의의로 규정하고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현행 제도 하에서는 한번 공간이 폐쇄되고 나면 향후 특정 조건을 충족했을 때 공간을 재배정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연구소 재정이 한번 파탄나면 재기할 수조차 없게 하는 냉혹한 제도인 것이다.

공간이 형평성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배분되려면 그 공간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가 먼저 명확해져야 한다. 대학의 공간은 경제활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교육과 학문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연구소는 학술활동을 하는 조직이지 연구비 수주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 아니다. 연구비 수주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학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해야만 하는 연구는 수없이 많다. 대형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소액 연구나 연구비 없는 연구라는 토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학과가 개설할 수 없는 분야의 강좌를 개설해 우리 대학의 교육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것도 연구소가 담당해야할 영역이다. 

무엇보다 대학연구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학문적 담론의 장을 열어 학문적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연구소가 각종 학술행사를 개최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연구비사용 결과보고가 아니라 담론의 장을 열어 학문적 소통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연구소가 학술지를 발행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학의 공간이 학문과 교육의 공간이라는 철학에 입각할 때만 공간사용의 형평성과 효율성은 확보될 수 있다. 우리 대학 본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공간배정기준을 개정해, 공간비용채산제를 경제활동이 아니라 학문과 교육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제도로 만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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