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사체가 부패해 범죄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부패된 사체는 체온 변화나 사후 강직 등 신체의 변화로 사망 추정시간과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때 바로 곤충으로 범죄를 해결하는 ‘법의곤충학’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사체에는 사건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곤충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곤충학적 증거로 사체 정보를 알 수 있다?
 
법 곤충학은 곤충학 증거를 활용해 법적 문제의 해결을 돕는 학문으로,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먼저 도시곤충학은 건물, 시설물 등에 침입한 곤충을 연구해 법적 갈등을 해소한다. 창고곤충학은 오염된 식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며, 곤충과 저장상태의 관계를 조사한다. 마지막으로 범죄의 실마리를 찾는 법의곤충학이 있다. 이 중 법의곤충학이 주로 법 곤충학을 가리킨다. 
 
법의곤충학은 곤충을 이용해 피해자 사체의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하는 데 활용된다. 이는 시신의 부패단계별로 달려드는 곤충의 종류가 다른 점을 이용한다. 사망 후 초기에는 대부분 검정파리과가 나타나며, 두 번째로는 쉬파리과 파리들이 사체로 찾아온다. 이들은 심장 박동이 멈추기 전에도 희미한 냄새를 맡고 달려들 정도로 민감하다. 이 파리들은 단 몇 분 내 시신에 도착해 2주동안 머문다. 따라서 사망시각 추정에 중요한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그 뒤로 부패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파리의 알과 구더기를 먹기 위해 딱정벌레 등의 시식성 곤충(시체를 먹음)들이, 부패의 정도가 더 심해지면 깜장파리속이나 치즈도둑파리과의 파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곤충의 종류를 이용한 사체의 경과시간 추정은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아직 어려움이 있다. 문태영(고신대 생명과학·화학) 교수는 “4계절마다 등장하는 곤충이 달라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파리유충이 가리키는 범죄의 진실
 
파리유충은 법의곤충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파리는 변온동물로, 대사속도가 기온에 의해 좌우된다. 때문에 파리유충의 유효적산온도를 이용해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 있다. 곤충이 자랄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기저온도라고 하며,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성장을 멈춘다. 또한 성장 가능한 가장 높은 온도를 최대임계온도라고 한다. 유효적산온도는 이와 같이 너무 낮거나 높은 온도를 제외하고 곤충이 성장할 수 있는 범위의 온도에서 가해진 열량을 모두 더한 총량이다. 이때 유충의 성장 과정에서 가해진 총 열량 자체는 주변의 온도대가 달라도 일정하다. 그러므로 주변 온도에 따라 유충이 성장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하면 사체의 사망시각 추정이 가능하다.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를 통해 유충의 유효적산온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한 유충과 기온을 이용해 가해진 유효적산온도를 계산한다. 이렇게 하면 유충이 존재한 기간, 즉 유충의 나이를 알 수 있다. 박성환(고려대 의학) 교수는 “유효적산온도를 사용해 유충의 성장시간을 추정한 후 산란시기를 알아야 한다”며 “이후 실제 사망시각은 마지막 행적(최대로 빠른 사망시각)과 산란시기(최대로 느린 사망시각)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충의 길이를 통해서도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 있다. 파리유충이 알에서 부화한 후 크기변화에 따라 산란시점을 계산한다. 실험실에서 유충을 키워 크기순으로 1령부터 3령까지 구더기를 표본화한다. 이후 피해자에게 검출된 유충을 이에 대입시킨다.  이 방법은 유효적산온도를 적용할 때 발생하는 △현장에서 살아있는 채로 곤충을 수집해야 하는 일 △성충이 되는 정확한 시점을 알기 위해 수시로 관찰해야 하는 점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유충의 길이에만 의존해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것에는 오차가 생길 위험이 있다. 구더기가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하는 시기에는 오히려 길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길이를 이용한 방법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유충의 뱃속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파리유충은 번데기가 되기 전 먹는 것을 멈춰 뱃속이 비어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뱃속을 확인해 3령 구더기인지 번데기가 될 준비에 들어간 섭식 후 구더기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길이를 이용한 방법은 번데기가 된 이후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번데기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리유충에게서 검출되는 물질을 이용해 사체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독극물로 인해 사망한 경우, 대부분 사체의 부패상태가 심각해 사망원인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구더기에서 검출된 독극물을 통해 피해자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구더기에서 검출되는 물질은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각에 영향을 준다. 음독 사망 시체의 구더기는 느리게 성장하는 반면 마약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한 피해자의 경우 구더기의 성장이 빠르다. 마약으로 인해 흥분한 구더기들이 시체를 빠르게 파먹어 성장속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실제 사망시각보다 이르게 추정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의곤충학이 범죄 해결을 도운 대표적인 사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중심인물  청해진 해운 유병언 대표. 당시 유병언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해 사망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설상가상으로 마지막 행적도 파악할 수 없었다는데.

박성환 교수(고려대 의학) 연구팀이 법의곤충학 감정을 통해 사체의 정보를 찾기 시작! 유병언 시신에서 검출된 구더기의 부화 시각을 추적한 결과 6월 2일 이전에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애초 연구진이 구더기가 알에서 깨어난 시점으로 추정한 것은 4일이었다. 하지만 2일부터 4일까지 현장에 비가 내린 점을 고려해 사망 시각을 6월 2일로 결론지었다. 왜냐하면 구더기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부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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