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너 초등학교 때 식당에서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가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거 기억나니?” 이 글을 쓰고 있던 오늘 저녁에도 아직 대학교 1학년 새내기라면서 식당 이모님께 너스레 떠는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렇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릴 적 나는 식당에서 먹고 싶은 것을 주문조차 하지 못했던 내성적인 아이였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께 “저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라고 하면, 다들 믿지 못하는 눈빛으로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손사래를 치신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이따금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시절 나의 모습과 비슷한 후배들의 모습을 보고, 다들 나처럼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청소년기 발달단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자아 정체감이다. 가장 나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 사람은 주변 친구들이었다. 그러한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너는 내성적이야. 너는 소심해”라는 말이기에, 나는 소심한 아이구나, 나는 내성적인 아이구나라고 무의식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정해버렸다.
 
주변에서 나의 모습을 정해주었기에, 나는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수업이 있으면 수업만 듣는 고등학생과 다름없는 생활을 반복했고. 타인이 정해준 나의 모습으로 지낸 대학 생활은 권태롭기만 할 뿐,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심리학과 사회복지학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서 돌아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과 지금 모습 간에 괴리감을 느꼈다. 나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그러한 생각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생각만으로는 지금까지 굳어있던 나의 습관과 모습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군대를 다녀오면서 나의 생활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로 인해 나는 나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남아있던 나의 대학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그 모습을 닮고 싶어 그들의 행동들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학구열이 뛰어난 친구를 닮고 싶어 그 친구를 따라 학술동아리를 꾸리고 학술대회를 진행해보기도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소신 있게 하는 동기의 모습을 닮고 싶어, 그 친구가 맡았던 심리학과 학생회장으로서의 생활도 하게 됐다. 또한 봉사 좋아하는 친구 따라 방학 때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와 달랐던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이 바라볼 때 진정한 '나'의 모습이 돼 있었다. 
 
바뀐 나의 모습이 예전과 비교해서 더 좋거나, 잘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예전의 모습보다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나에게 더 맞는 옷을 입었다고 느꼈을 뿐이다. 지금 나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아니면 나의 후배, 그리고 또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정해준 '나'의 모습에 갇혀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에게 맞는 옷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모습을 스스로 선물해주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