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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왜 맛있는 걸까?
  •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 승인 2017.09.02 23:34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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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거리의 잉글랜드 서남부 지방에 가면 바스(Bath)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이름처럼 로마 시대에 지어진 온천 목욕탕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근처에 스톤헨지라는 거대한 선사시대 돌 유적지도 있고, 영국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바스 대학도 있다. 몇 해 전, 바스 대학을 방문했을 때, 학생회관에 있는 편의점에서 우리나라 라면이 중앙에 진열돼 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 식품점에서 한국 라면을 발견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영국의 외곽 지역에 있는 대학 내 편의점에서까지 한국 라면을 만나는 경험은 신기하고 뿌듯했다. 이 대학의 교수인 영국 친구는 한국 라면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했다. 

우리 라면은 이제 세계적인 식품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인기 있는 라면 맛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라면 매니아들은 “국물은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선택은 면발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하며 탱탱한 면발에 열광한다.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면발에는 분명 뭔가 끌리는 것이 있다. 면발의 맛은 면을 물에 넣고 끓이는 시간에 달려있다. 라면의 조리 시간은 보통 3분인데 실제로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을 보면 면에 따라 다양하다. 쫄깃한 맛을 내려면 짧게, 약간 퍼진 맛을 원하면 더 오래 끓이면 된다. 라면은 종류에 따라 끓이는 시간이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봉지에 적힌 조리시간을 무시하고 나름의 레시피에 따라 면을 삶는다. 

“어떻게 끓인 라면이 더 맛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전, 우선 면발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자.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든 후 제면기에 넣으면 꼬불꼬불한 형태의 면이 나온다. 100℃ 이상의 스팀박스에서 한번 익혀진 면발을 신선한 팜유가 연속적으로 공급되는 통 안에서 150℃의 고온으로 튀겨 주면 라면 면발이 완성된다. 라면이 맛있는 이유는 바로 이 튀기는 과정의 과학에 있다. 물을 한껏 머금은 면발이 고온의 기름으로 튀겨지는 과정에서 밀가루의 전분이 가수분해되는 ‘덱스트린화’가 일어나는데, 이 과정은 단백질의‘젤라틴화’와 유사하다.

일류 요리사들은 재료의 풍미를 잘 살려내는 비밀 레시피로 ‘마이야르’ (또는‘메일라드’) 반응을 이용한다. 고기가 높은 온도에서 카라멜화 되는 과정을 갈변반응이라고 하는데, 맛있게 구워진 스테이크의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고 식욕을 돋우는 냄새를 내는 것도 라면 면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젤라틴화와 같은 원리다.  얇게 썬 식빵이나 살짝 구운 토스트, 파니니 샌드위치가 맛있는 이유도 역시 마이야르 반응으로 식빵 표면이 카라멜화된 결과 때문이다. 면발이 쫄깃하고 고소한 풍미를 내는 라면에는 최고 요리사의 레시피가 숨어 있었던 것. 라면이 맛있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라면의 또 다른 장점은 짧은 조리시간이다.'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과도 궁합이 맞다. 라면 삶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는 것은 면발 속의 스펀지 구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을 먹은 전분이 고온에서 튀겨 질 때, 앞서 설명한 젤라틴화 과정이 일어남과 동시에 기름의 높은 온도에 의해 수분이 스팀으로 급격히 분사되며 증발한다. 보통 튀김 과정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탈수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스팀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구멍들은 스펀지 같은 구조를 만든다. 면을 삶을 때, 끓는 물이 면발 속으로 잘 스며들고 물과 면발의 접촉면적을 키워 열 전달을 도와준다. 그래서 면이 빨리 익고 조리 시간도 줄어든다.

“끓는 물에 3분”이라고 적힌 조리법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라면을 끓일 때 봉지에 적힌 조리 시간보다 자신만의 직관적인'감'에 따라 요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면발의 스펀지 구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튀김 과정에서부터 고급 스테이크의 풍미가 나온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훨씬 더 맛있는 라면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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