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이 적은 편이다. 어련히 시판되는 물품 중에 인체에 해가 될 만한 화학 물질은 포함 안 됐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성 물질이 포함됐더라도 사람에게 안전하니 이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는 낙관도 있다. 혹여나 영향을 끼친다 한들 100% 확률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화학물질의 특성상 가시적으로 변화를 확인하기가 힘들다. 이를 두고 안전 불감증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매일 불안감을 안고 경계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어느 화학제품이든 ‘설마 인체에 영향을 미치겠나’ 하는 관망자의 마음으로 여태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니 ‘어련히 그렇겠지’ 했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자연의 것이라 생각했던 계란은 암세포를 품은 알이었고, 한 달에 몇십 개씩 사용하는 생리대는 원인 모를 부작용을 일으켜 여성의 몸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생활에 밀접하고 그 자체만으로 영향력이 큰 물건들이 거론되고 있으니 퍽 당황스럽다. 화학물질의 피해 범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안일했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정도로 우리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물품들이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필자와 같아서 문제 해결을 포기하고 이리도 곪을 때까지 관망한 것인가 싶다. 

일단 식품의약안전처의 늦장 대응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처를 보고 있자니 그들만큼은 관망자를 자처하고 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유럽에 계란 살충제 오염 파동이 일어났을 때도,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는 발표를 했을 때도 그들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뿐이랴. 19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겪고도 이제야 등 떠밀려 규제의 구멍을 메우려는 모습을 보면, 본인들의 직무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몰랐던 게 틀림없다. 모든 문제의 일차적 원인이 생산자에게 있음을 몰라서 하는 말도 아니다. 다만 기업은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인 만큼 그 과정에서 이익을 위해 인간 된 도리를 버리더라도 소비자는 쉽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런 기업을 규제하는 것, 그럼으로써 소비자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안심시키는 것 또한 국가의 도리 아닌가. 정부도 바뀐 마당에 개인의 안전한 삶 보장이 여전히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허망하기만 하다.

그나마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위험을 스스로 조심하면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화학물질도 ‘친환경’이라서 혹은 ‘순수’한 면을 사용해서 ‘안전’하다는 상품만 이용하면 정말 안전하리라 믿었다. 부질없는 믿음이었다는 게 입증되고 나니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다. 당분간은 여전히 관망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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