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전 오늘, 전라남도 의병 주둔지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본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 때문이다. 병사들은 이전부터 지속된 전투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하지만 눈빛과 정신만은 살아있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기백 가득한 눈빛에는 두려움도 서려 있다. 과연 내일도 살아있을지, 앞으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지를 자문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1909년 9월 1일, 일본군은 정규군 2,000여 명을 전라남도에 투입했다. 작전명 ‘남한대토벌작전’. 당시 호남지역은 항일 의병 운동이 가장 거세게 이뤄졌던 곳이었다. 때문에 일본제국은 호남지역의 의병을 식민지화의 걸림돌로 생각해 그들을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 작전은 전라남도를 감싸는 봉쇄선을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여기서 일본군은 두 개의 연대로 나눠 움직였다. 하나는 강을 따라 전진하고 다른 하나는 산맥을 따라 이동했다. 동시에 일본제국은 전라남도 해상에 군사를 배치해 의병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의병들을 완전히 포위하는 작전이었다. 의병들은 전면전을 피하고, 병력을 나눠 일본군의 봉쇄선을 뚫는 데 주력했다. 일본군은 의병 이외, 민간인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마을을 수색해 조금이라도 의병으로 의심되면 죽였다. 약탈과 방화도 일삼아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의병들의 노력에도 2,000명이 넘는 군대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작전은 10월 30일에 종료됐다. 4,000여 명의 의병들이 포로가 되거나 숨졌고, 심남일과 안규홍 등 약 100여 명의 의병장이 체포돼 처형당했다. 일본군의 포로가 된 자들은 도로 건설 작업 등의 강제노동에 동원되기도 했다. 살아남은 의병들은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남한대토벌 작전에 대해 홍순권(동아대 사학) 교수는 “대부분 사람이 당시 한일병탄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아무런 저항 없이 국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 목숨 바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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