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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가 빛났던 시절로 되돌아가려면
  • 장원 기자
  • 승인 2017.08.27 05:29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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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곡류에 곰팡이를 번식시킨 누룩으로 술을 담아왔다. 과거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어, 마을에는 누룩 냄새가 퍼지곤 했다. 이렇게 전해 내려온 방법으로 빚는 술을 전통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집에서 누룩을 직접 떠서 술을 빚는 문화는 사라진지 오래다.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곳조차 소주와 맥주에 밀려 사람들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있다.

찬란했던 전성기 갑작스런 암흑기 

우리 전통주의 유구한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고문서  <고사기(古事記)>에는 백제 사람 인번이 누룩을 이용한 술 빚는 기술을 일본에 전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술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우리 전통주를 △청주 △탁주 △소주 △과실주로 나누어 제조하고, 생약재, 꽃 등 다양한 원료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몽골을 통해 증류법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늘날의 소주가 생겨났다. 조선시대에도 우리 전통주의 발전은 계속 이어졌다. 발효를 여러 번하는 중양법으로 더 고급진 술을 만들었으며, 각 지방과 가문마다의 비법으로 빚어진 명주도 등장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우리 전통주는 위기를 맞이한다. 1907년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쌀을 통제하기 위해 가정 내에서의 양조와 주류 판매를 금지시킨 것이다. 이후 수백 종에 달했던 우리 술은 사라지고 값싼 곡물에 주정을 추출하고 난 후, 첨가제를 넣어 희석시킨 값싼 소주가 대량생산됐다. 위기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다. 정부가 조선총독부의 주세행정을 이어나가고 6.25전쟁 이후 식량난도 도래했다. 게다가 1965년 쌀로 주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까지 제정돼 전통주는 설자리를 잃고 만다. 198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전통주는 무형 문화재 지정, 발굴 등의 정책으로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갈 길 먼 전통주의 부흥

전통이 단절될 위기를 딛고 전통주가 다시 발전하나 싶었지만, 아직 전통주의 입지는 넓어지지 않았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주류시장의 총 출고금액 약 9조 3616억 원 중에서 전통주의 비중은 약 408억 원으로 약 0.43%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매출액 성장률도 아직 전체 주류시장에 비해 낮은 편이다. 2010년과 2014년의 매출액 성장세를 비교했을 때 전체 주류시장은 2010년 대비 13.7% 성장했으나, 전통주는 7.8% 성장했던 것이다. 한국전통주진흥협회 김홍우 회장은 “2010년에 전통주법이 제정되면서 이전보다는 대중에게 전통주가 알려졌다”며 “하지만 아직 전통주는 대중에게 들어는 보았지만 접하기 힘든 술”이라고 말했다.

전통주 관계자들 “가치있는 우리 고유문화, 보존해야”

전통주 전문가들은 우리 전통주에는 유구한 역사와 우리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어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우리가 내새울 수 있는 전통주의 가치는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우리 전통주는 각 지역과 집안의 독특한 가양주 문화로 인해 자리 잡아왔기 때문에 그 수 역시 많았다. 가양주는 집에서 담근 술로, 제사 등에서 쓰거나 빈객 접대를 위해 만들어졌다. 국내 가양주는 대략 130가지로, 집집마다 원료의 처리방법부터 제조과정, 숙성방법까지 다 달라 그 맛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명가원영농조합법인 박흥선 대표는 “다양한 술 빚는 방법은 계승해야할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면 전 세계에 우리만의 차별화된 술을 내놓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통주 산업이 발전하면 우리 농산물 소비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법률 상 국산원료만을 사용하여 빚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1차 산업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다. 실제로 영국의 스카치위스키 산업은 농촌 일자리 비중의 약 18%인 4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간 임금총액으로 약 2조원을 산출했다. 한국막걸리협회 배혜정 회장은 “전통주의 제조는 우리 농산물의 소비와도 연결된다”며 “농가도 살리고 우리 전통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장원 기자  mkij1213@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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